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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즈벡 면세점 - 치명적 우즈벡



귀국길에 러시아 특산물인 벨루가 보드카 한병을 구매하려고 들렀다 인천에서 나갈때 워낙 촉박하기도 했거니와 

자주접하게되는 인천 면세점이 아닌 타국의 면세점은 공항에 일찌감치 들어와 할일없는 이방인들의 흥미를 자극하기에는

충분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밤비행기 임에도 우즈벡 면세점은 모두 영업을 했다 


향수 /술 /담배/ 기념품을 모아둔 매장 하나 

시계/ 귀금속(스와브로스키)을 모아둔 매장 하나

크로커다일을 비롯한 의류 매장 하나 

간단한 음료와 식사를 할수있는 까페 하나

단촐한 조합으로 구성되어있고 티솟 시계나 간단한 전자제품을 팔고있지만 모델명으로 인터넷 검색을 해보면

한국 인터넷 가격이 훨씬 저렴한걸 알수있다 - 대부분의 제품


문제는 판매가격이 모두 유로로 책정되어있다는 것인데 면세점에서는 이걸로 장난을 친다 


1.어디에도 적용 환율에 대한 언급이 표기되어있지않다 

가격이 유로로 책정되어있기때문에 우즈벡 숨이나 미국 달러로 결제할경우 어떠한 환율로 계산하는지 안알려주고

그냥 재빨리 계산기를 두드리고 숨이든 달러든 지불해야할 금액만 알려준다 

2.공항 내부 면세구역에 위치한 면세점인데 항공권이나 여권검사를 안한다

그냥 일반 매장이라고 인식해도 무방하다 

3. 물건을 구매하고 나면 영수증을 주는데 영수증에는 품목과 금액같은 세부내역은 일절 존재하지않고

유로로 합산된 총합금액만 표시된다 (따라서 영수증 크기도 매우 작다)


사람을 봐가면서 적용하는 환율이 다 다르다 어떤사람에는 1 대 1.3을 적용하기도 하고 어떤이에게는 1대1.4를 적용하기도한다

당연히 숨으로 결제하면 엄청난 핸디캡을 받게되고 심지어 카드로 결제하면 가격이 더 저렴해지는 마법이 발생하기도 한다

우즈벡 면세점으로 인터넷에 검색해보면 포스팅 몇개를 발견할수있는데 물건을 많이 사게될경우 물건 몇개를 빼버리고 

포장을 한다거나 금액에서 문제가 있다는 포스팅을 볼수있다 


아무리 바빠도 기념품은 밖에서 구매하는걸 추천한다 벨루가 보드카와 석류모양의 기념품, 음료수 한캔을 샀는데 

유로와 달러가 심각하게 차이가 나서 영수증을 요구했더니 금액으로된 영수증만 보여줬고 결국 환불해야만 했다 

*컴플레인을건 손님에게는 물건을 더이상 팔지않는 경우도 있으므로 참고하기 바란다 


우즈벡에서 좋은기억을 가지고 마무리하게되는 마당에 우즈벡 면세점에서 마음의 상처를 받는 사람들이 

더이상 생기지 않기를 바라며 




귀국행 비행기를 기다리는 지금 우즈벡 공항에서는 드라마 촬영이 한참이었다 




우즈벡 아리랑 요양원 우즈벡



고향이 그리워서 보고픈 마음에 소나무를 심었다고 했다

 

여기서 고향까지는 어림잡아 5천키로... 증기 기관차40일을 왔다고 했다

 

지금 그 소나무 키가 한참을 올려다볼 만큼 자랐다

 

  

우즈벡에서의 삶을 마무리짓는 몇일 안남은 타슈켄트에서 원래 아리랑 요양원은 하루일정이었다

 

화투를 쳐드리고 진료를 하는 일정으로... 정말 가벼운 마음으로 방문했고 진료를 마칠무렵 한 할머니를 만났다

 

  

할머니는 여산 송씨였다 같이계시는 원장님이 송씨였고 우리엄마가 송씨였기때문에 본의 아니게

 

엄마가 여산송씨인걸 말했었는데 할머니도 송씨여서 원장님과 본을 맞춰보다가 여산 송씨인걸 알게된것이었다

 

할머니 이름은 '송 마리아' 고려인 할머니였다

 

  

할머니는 나를 굉장히 반가워했다 나는 송씨가 아니라 신씨임에도 '친척'이라는 표현을쓰시면서 무척이나 반가워하셨다 


'어쩌다가 우리 친척이 이 먼곳까지 왔느냐며' 정작 본인이 이주하게된 굴곡진 삶의 대해서는 잊어버리신듯 했다 


무척이나 무던한 안부가 무척이나 무겁다

 


내일은 원래 우즈벡에서의 활동을 정리하고 마무리 짓는날이다 인사도 해야하고 짐도 싸야하는 일정속에서 


아리랑에 한번더 가기로했다 



짐을 정리하는 나에게 한 할머니가 "내일 아니 오오?" 하고 물으셨고 내일 오지 못한다는 말씀을 어렵게 전했는데 


" 조심히 살펴가오"





 

"내일 아니오오?"  "조심히 살펴가오 먼길 와줘 고맙소"

"내일 아니오오?"  "조심히 살펴가오 먼길 와줘 고맙소"

"내일 아니오오?"  "조심히 살펴가오 먼길 와줘 고맙소"


 

개털같던 나라때문에 얻은 고난과 핍박의 시간이 우즈벡과의 축구가 승리한 오늘과 겹쳐진다 


우즈벡 목화밭 솜털보다는 무거워진 오늘의 대한민국에 감사하면서 개털 같던 과거의 국가를 돌아보다.


동력수상레저면허 1급 취득기 한국




딱히 동력수상레저면허를 따야겠다는 생각은 없었으나 수술뒤 강제로 누리게된 나만의 시간에 충실하고자 대형면허를 취득했고

대형면허를 취득하고나니 무언가 아쉬움이 남아서 화물종사자 자격증명과 버스운송종사자 자격증명을 취득했는데

이것들을  취득하고도 여유가 남아 동력수상레저면허에 도전하게되었다 (여러분 암이 이렇게 무섭습니다)


필기는 몇점이 합격점수인지 이제는 기억도 잘안나지만 95점 맞은건 기억난다 분명히 700문제 문제은행에서 골라서 낸다고 

했는데 못보던 문제들이 나와서 많이 당황했었으나 답안제출과 동시에 점수가 나오는 CBT방식으로 비오는 여의도 

한강파출소에서 시험을 봤다 보통 인터넷 검색을 해보면 700문제 2번정도 숙독하면 합격률이 100프로에 육박하는것을 볼수있다 

문제는 실기




식당 안하고 펜션안합니다 시험만 칩니다



집에서 출퇴근으로 응시가능한 실기시험장이 가평이 제일 가까웠고 서울 마포 반포 두곳이 있었는데 이곳은 알수없는

이유로 꺼림직했고 차라리 이모가 살고있는 아산에 가서 시험을 볼까 했으나 가성비로 따지면 가평이 제일 갑인것 같았다

 

가평에는 초급과정 일반3일과정 60만원이 비공식적으로 "합격할때까지" 과정이었기때문에 겸손한 마음으로 60만원결제!

깔끔하게 카드결제를 먼저 하자고 하는 마음가짐이 날로(?) 진행하는곳이 아니라는 알수없는 믿음을 주었다(?)

다른시험장은 두번타기 네번타기 이런식으로 횟수가 정해져있는경우가 많으나 가평은 "합격할때까지" 라는게 마음에 들었다

뉴스검색을 해보면 이 "합격할때까지" 패키지가 문제라고 비판하는 기사가 나오는데 평가는 개인에 맡긴다 

시험 전주에 코스를 타면 5만원 할인해주는데 5만원 할인보다 운전의 감을 잊지않기 위해 직전까지 연습하는것을 추천한다





일반 조종면허시험 실기 채점기준 1급은 80점 2급은 60점을 취득하여야하는데 2급은 무난하다 심지어 4일간 교육을 이수하면

그냥 면허증을 주는 과정도 있다 (시간과 돈을 고려하여 선택하시라) 채점기준표를 잘보면 알겠지만 1급은 아차 하는 순간에

모든게 물거품이 되기 쉽상이다 실기 시험 과정은 출발전 점검과 변침(운항 각도변경), 사행, 익수자 구조, 접안으로 나뉘는데

살벌하다 시험보다가 해당 합격점수에 미달될경우 즉시 시험관이 핸들을 빼앗고 옆자리에 타서 돌아와야 한다 

그래서 입으로 할수있는 안전점검과 구명조끼 착용, 시험관의 지시에 대한 복창등에서 감점당하지 않게 잘해야된다





시험은 A코스 B코스로 나뉘어져있고 변침순서가 다를뿐 사행이후 익수자 구조및 접안은 같다 변침은 정해진 각도로 운항하는

배를 이동하는건데 나침반 보고 맞출려면 이게 굉장히 어렵다 짐작했겠지만 자동차 운전면허 시험처럼 정해진 "공식" 이 있고

이 공식대로만 한다면 사행을 제외한 합격에는 큰 무리가 없다 - 자동차는 정말로 정해진 공식이 완벽하게 존재하지만

조종면허는 핸들을 빨리 풀어줘야하는 특성이 존재하므로 보트운전 안해본사람은 꼭 사전에 타보고 시험보길 추천한다

간혹 대형면허 유튜브로 공부하고 합격하시는분들이 있는것으로 아는데 보트는 많이 다르다 시험볼때 100점 만점을 시작으로

감점을 실시하여 전여점수가 2급은 60점 1급은 80점이 안되면 바로 핸들을 뺏어 버린다



119들과 함께 첫 시험을 봤다 119는 모두 2급을 응시했다 


보통 필기시험을 보고 실기를 보는게 맞지만 필기부터 실기까지 하루에 진행하는 사람도 많다 사전에 실기연수를 받은뒤

오전에 필기를 합격하고 오후에 실기를 합격한뒤 안전교육까지 실시하여 한방에 마치는것이다 나역시 시험이후 일정이 

빽빽하게 있었으므로 실기시험을 한번에 붙는것이 매우 중요했는데 긴장때문이었을가 사행에서 망쳐버렸다 


사행은 물위에 떠있는 세개의 부표를 지그재그로 왕복하는것인데 조종면허에서 굉장히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속도가 붙은 배가 암초에 둘러쌓인 지대를 안전하게 벗어나려면 당연히 할줄알아야 하는 기본 기술로 선생님은 설명했다 

시험볼때는 부표3미터 이상 이격 15미터 이내 거리에서 실시하게되는데 감점요소가 제일 많다 나역시 변침은 잘되었으나

사행이후 감독관이 중간 점수를 채점하더니 바로 핸들을 빼앗았다 포천에서 가평까지 운전으로 40분이 걸리는데 세상억울했다

심지어 3일동안 연수받은 사람중에 나만떨어졌다 세상억울할때가 





개인일정을 마치고 한달뒤 면허시험장에 전화를 했고 흔쾌히 연수일정을 알려줬다 현재 가평에는 두명의 강사가 있는데

한번 떨어지고나면 강사를 교체해서 가르치는것 같았다 처음에 배웠던 강사말로 다른강사에게서 배웠는데 무언가 안정된기분

필살합격을 위해 엄마를 시험장에 데리고가서 엄마는 북한강을 보며 책을 읽고 나는 시험을 봤다 점수는 83점 합격

면허취득을 위해 당일 오후에 실시하는 안전교육을 이수하여야 했지만 오후에 일정이 있었으므로 다음을 기약할수밖에 없었다 

수상면허 따기가 이렇게나 힘이든다 










안전교육은 난지도에 위치한 시험장에서 받는것으로 일정을 조절했다 주의할점은 이곳 난지도 시험장은 물위에 떠있는 바지선인데

네이버에 검색하면 잘못된 위치와 전화번호가 표시되어있으므로 반드시 해양수상레저 종합정보 사이트에서확인하고 갈것

버스타고 살살 걸어도 될 거리를 택시타고 두바퀴를 돌아서 만원을 내니까 기사아저씨가 불쌍하다고 미터를 껐다 

사실 아저씨가 처음 데리고 간데가 맞는데 네이버 지도를 보고 박박 우긴 내잘못이 크다 네이버에 수정요청을 했는데 

거절당한것은 사족






워낙 더운날시에 진행된 교육이었고 교육의 내용역시 집단교육이 주는 그 특유의 나른함때문이었을지 축축 처지는 기분이었다

여자교육생도 다섯명정도 보였다 사진 오른편 원형으로 스포트된 사진은 한강에서 카약타는 아저씨인데 매일 김포에서 여의도를

카약으로 출퇴근한다고 했다 차도안막히고 건강도 챙기고 1석2조라고했다 한강 카약 아저씨를 제외하고는 별다른 교육내용이

기억에 남는것은 없다 교육마치고 강남 빕스에서 약속이 있었는데 택시비가 꽤 나왔다는것 말고는 감흥이 없음

안전교육비 2만5천원에 면허증우편발송 신청 8천원 총 3교시로 진행되고 출석을 매시간 부르기때문에 튈생각을 하면 안된다


* 강사님은 올해 바다에서 기름떨어져서 해경부르는 조난신고 많다고 제발 기름 잘 넣고 다니라고했다 

  바다에서 해경부르면 급하게 기름은 넣어주는데 배와 면허에대해서 먼지까지 다 털어준다고했다

 



우즈벡에 나가있는동안 집으로 도착한 면허를 엄마가 사진찍어서 보내줬다 나는 이제 버스 트럭 모터보트를 몰수있는

사람이 된것이다 원래 일정대로 합격했다면 해기사 시험에 바로 응시하려고했었는데 낙방의 고배를 마시는 바람에 

일정이 한참이나 뒤로 밀리게 되었다 이렇게 나는 할수있는게 늘어났다 1종 레저면허를 땄는데 해기사를 안치면

바보라고했다 실기시험을 준비하면서 해기사책을 사뒀다 이제 해기사를 위해 준비할 시간이다 

바뀐 계절만큼이나 바뀐 일상이 어색하다


1 대 100 녹화 참가 후기 한국




워낙 시간이 많은사람이 되었고 여유가 넘치는 사람이었기때문에..... '앞으로 뭘하지' 에 대한 고민과 함께 '당장 뭘하지'에 대한

생각의 시간이었기때문에...... 정말 가벼운 마음으로 인터넷 예심을 봤던것 같다

인터넷을 보면 50문제중 35문제 이상 맞춰야 합격하는걸로 나온다 검색을 해보면 여기 나가려고 검색찬스 써가면서 

예심통과하는 후기나오는데 남들 들러리 서려고 가는게 아니면 검색찬스는 쓸수록 본인이 자괴감느낄수있을것 같다/ 비


자전거타러 나가는길에 합격전화받았고 로고없는 밝은색 상의입고오라고했다 녹화는 일요일 오후 5시15분

밤 11시나 되어야 끝난다고 오랫동안 일어서있는데 부담은없는지 밤 11시에 끝나도 문제없는지 

일요일이라서 주차요금 안받는다고 알려줌 목소리 여린 남자 작가였음



나는 5시 15분까지 오라고해서 갔는데 저렇게 모여있었다 오후 녹화가 아직 안끝났다면서 저녁녹화는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방송 촬영이니까 밥이나 간식정도 주지않을까 생각해 봤는데 1대100 자주참여하시는걸로 추정되는 일행의 대화를 엿듣고선

바로 편의점에가서 햄버거 한개랑 음료수 한개를 사먹었다 저녁 부터 11시넘어서까지 녹화가 진행되는데 밥안준다고했다

신관공개홀 입구에서 이름적고 싸인하고 들어가면 1대100 녹화장이 나온다 TV에서는 되게 큰곳인줄 알았는데 

딱 1대100을 위해 만들어진 그런 세트같았다 





방청석에 좀있다가 번호적힌 설명종이 나눠준다 이때 급하게 빵꾸낸 참가자를 대신해서 현장에서 긴급 참가자를 모집하는데

이번녹화에서는 5명이 예고없이 안와서 현장에 방청객으로 왔던 5명이 100명의 참가자중 1명으로 현장에서 예선없이 바로

투입되었다 나는 이걸 100명중에서 1명의 도전자로 나갈사람 뽑는다는걸로 잘못 알아듣고 나가서 작가한테 무안당함


여자개그맨 바람잡이가 바람잡고 조충현도 바람잡고 그러는데 분위기는 전반적으로 체력이 좌우하는 느낌이다

출연자가 나오면 문제푸는 중간중간에 토크를 엄청하는데 이게 10분이상씩 하다보니 100명의 참가자들은 그냥 서서 듣기만한다

그렇다보니 지쳐서 문제가 잘 안풀리는 느낌을 받음 - 언제 카메라가 올지모르니까 웃으면서 바른자세로 서있어야되는


문제는 워낙 범위가 다양하다보니 누구에게는 쉬운문제가 누구에게는 어려운문제가 되는 그런 퀴즈정글이다 

워낙 전국에서 퀴즈 고수들만 모인느낌. 실제로 나는 중간에서 떨어졌지만 최후의 문제까지 답을 아는경우가 있었고

7단계까지 갔을때도 어이없는 문제에서 떨어지는....지식을 묻는 퀴즈를 넘어선 운이 작용하는게 있는것 같다 


무난한 녹화를 마치고 신세계 상품권 2만원 받고 귀가함 

전국 퀴즈고수들을 만날수있었던 좋은기억이다

지금, 그리움만 남았다 한국


퇴원하는 마지막 날도 아침부터 부슬부슬 비가 내렸다 아침에 일어나서 신지를 먹고 피검사를 한 다음 


이른 아침 외래에 다녀왔다. 무난한 퇴원의견. 모두가 긴장한다는 퇴원 후 첫 외진은 일주일쯤 뒤인 23일로 잡혔다 


이때 조직검사 결과를 통한 암 확진과 중증환자 등록을 해준다고 했다. 어차피 떨어진 갑상선인데 이제부터 정신을 


바로차려 보험처리라도 확실히 해야지 싶었다.


 

대학병원은 퇴원하는 데에도 절차와 시간이 많이 걸리기 때문에 서두르지 않으면 점심시간을 넘길지도 모른다고 했다


퇴원도 몇 군데 부서조율이 필요한 것 같았는데 열시 반쯤 간호사가 와서 퇴원해도 좋다고 가서 수납하면 된다고 


안내해줬다. 아침밥을 먹을 때 퇴원을 축하한다는 병원장 문구가 간단히 적힌 인쇄된 카드와 잘게 자른 몇 가지 과일을 


컵에 담아 퇴원 축하식으로 줬다 이렇게 퇴원은 축하받아야 마땅한 일임에도 큰 감흥이 없다. 집인 포천까지 어떻게 


갈 것인가를 두고 엄마와 잠시 고민을 했지만 그냥 택시를 타기로 했다. 밖에는 비가 왔다.


 

퇴원 후 집에서의 생활은 별다를 게 없다 나이에 맞지 않게 모았던 비디오 게임을 하거나 책을 읽거나 가벼운 집안일을 


했다 갑상선이 없는 나는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 수술 전과 똑같이 살 수 있을 것 인가?에 대한 고민을 했지만 


이런 건 고민한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님을 잘 알고 있다. 마음한구석 박스에 담아 잠시 넣어두기로 했다 수술 후 


입맛을 순간 잃었는데 먹고 싶은 대로 다 먹었다가 감당 안될 만큼 불어날 체중이 걱정되기도 했고 수술 후에 잘 먹지 


못해서 회복이 늦어지는 것은 아닌지에 대해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입맛은 삼일정도 뒤에 돌아왔다


단지 갑상선 수술을 마쳤다는 우울한 감정이 나를 그렇게 만든 것 이라고 생각한다.


 

첫 외진을 가기 전에 보험회사와 준비해야할 서류에 대해서 매듭지어야만 했고 단지 그뿐이었다 집에서 정말 


마음 편히 게임하면서 책 읽으면서 외진까지의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첫 외진을 맞이했다.


 

서울까지 차를 끌고 갈까 하다가 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탔다. 2호선 전동차, 조금은 붐비는 그 전동차 안에서 


이제 장애인 노약자 석에 얼마간은 앉아도 되지 않을까라는 귀여운 생각을 해봤다 신당역을 지날 때 전만큼 


가슴이 답답해지거나 막연하지 않는다. 덤덤해지는 내가 조금은 대견스럽다. 6호선 안암역에 가본사람은 알 텐데 


꽤나 역 바닥이 깊은 곳이다 심지어 에스컬레이터도 없는 곳이기 때문에 잠시 망설이다가 살면서 처음으로 


노약자용 승강기를 타봤다 함께 타신 분들이 눈치를 주면 어떡하나 잠시 고민했었는데 아무도 나를 신경 쓰지 않았다


원래 나의 존재란 세상에서 그런 것 이었다.


 

외진은 너무나도 무난했다 수술은 잘되었고 전이도 없었고 앞으로 수술을 집도한 이비인후과 의사와는 외진을 


실시할 일이 없을 거라고 했다 앞으로 나는 내분비 내과 환자가 되는 거였다. 수술한 양쪽 모두 암이라는 진단서 


한 장과 중증환자 등록하시라고 서류 한 장을 줬고 간호사가 밖에서 보험 청구에 필요한 서류를 다시 한 번 정리해줬다.


그리고는 갑상선 수치를 관리하는 다른 교수님에게 진료를 했는데 예후가 좋아 동위원소 치료는 불필요 하다고 했다


다만 갑상선 수치가 낮아 복용할 신지 용량을 늘렸고 다음달 14일에 혈액검사를 21일에 수치에 따른 외진을 하기 로 


했다. 친구 졸업식이 19일 토론토에서 있어서 쉬는 김에 다녀오려고 했는데 물 건너갔다


쉬는 동안 토론토 낚시를 검색하면서 힘을 냈는데 아쉽게 되었다.


 

수납을 하면서 중증등록을 하고 진료비를 환급받은 다음 병원 앞 약국에서 약을 받는데 칼슘약이랑 신지로이드 


한 뭉텅이가 천 백 원이었다. 약국 수납창구에서 중증 등록 한 거 맞으시냐고 물었는데 마침 그 순간 문자로 


한정특례 선정 문자가 왔는데 기분이 묘했다 병원비를 그리고 약값을 적게 내면 감사해야 하는데 꼭 감사한 


마음이 안 드는 그런 기분 


감사했는데 감사하지가 않았다.



백수의 진단서에는 얼마간의 근로능력이 제한되는지 얼마간의 병가가 요구되는지 적혀있지 않고 적을 필요도 없기 


때문에 무척이나 심플했다. 집에 돌아가는 길에 찬찬히 다시 읽어봤는데 얼마간의 근로능력 제한이 명시되지 않는 


진단서가 주는 의미에 대해서 - 의사와 내가 서로 번거롭지 않아서 좋다는 생각과 내가 사회로 돌아가는데 얼마나 


시간이 걸리는지 더욱 막연해지는 것 같아서 더 막연해진다는 생각을 해봤다


 

집에서의 일상은 무료하다 아침을 먹고 쉬다가 잠을 자고 점심을 먹고 쉬다가 책을 보거나 낚시를 갔다 가평으로 


철원으로 임진강으로 낚시를 다녔다 평소에는 관심도 없던 물고기에 대해서 마치 물고기가 인생의 꿈이라도 되는 


양 물고기를 잡아야만 되는 사람처럼 물고기를 쫒아 다녔다 잡지 못하게 되니까 더 잡고 싶어졌고 못 잡을 때의 


아쉬움이 더 커졌다 그나마 다행인건 물고기는 어떻게 잡아야 하는지 물어보고 조언을 구할 사람이 주위에 너무나도 


많이 존재한다는 거였다


실수를 하고 또 그 실수를 고치고 그러면서 커가는 거라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그리고 내 인생도 그렇게 되기를 바랐다.


 

외진 후 며칠 뒤 친척 동생의 결혼식이 서울 남쪽에서 있었는데 장거리 운전으로 다녀왔고 운전한 다음날 크기가 


커져버린 거위의 집을 만든다고 무리를 했더니 저녁을 먹을 때 목구멍이 죄어드는 느낌이 났다 목 넘김도 굉장히 


불편한 기분이었다. 급하게 동네 큰 병원 응급실에 갔는데 자신이 없다고 수술한 병원에 가라고 했다 


한밤중에 고대병원 응급실에 갔지만 기도가 약간 부었을 뿐 특별한 응급상황은 아니라고 했다 퇴원 후 


목소리가 돌아오지 않는 것을 빼면 큰 불편함이 없었기 때문에 목운동에 대해 방심했던 것은 아닌지 후회가 되었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 연락 오는 지인들에게 일일이 병과에 대해 설명하는 것에 대해 피로를 느꼈고 SNS에 수술 후에 


찍은 셀카를 올림으로서 나의 수술 사실을 한 번에 그리고 만방에 알렸다. 수많은 위로가 도움이 되기도 했지만 


때로는 더 막연함을 줄때도 있었다. ‘언제 낫느냐? 언제 정상(사회)으로 돌아오느냐?’는 질문이었는데 진단서에도 


없고 의사도 언급 한 적이 없으므로 나도 대답하기 어려웠다. 인터넷에 누구는 한 달을 쉬었다고 했고 또 다른 누구는 


두 달을 쉬었다고도 했다 거울 앞에서 스스로 바라보는 흉터는 그냥 절개를 했고 봉합을 한 외과 환자로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원래부터 갑상선은 보이지 않았고 지금도 있는지 없는지 눈으로 보이지 않기 때문에 흉터가 


말끔히 사라져 버린다면 내가 다시금 이 순간을 기억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생각해 봤다


 

수술 후 보름쯤 뒤에 이별을 맞이하게 되었다. 우리는 대부분 이별의 이유를 찾거나 묻는데 익숙해져 있지만 관계가 


의미하는 것과 결별이 의미하는 것은 너무나도 명확하다 관계 안에 누군가 더 이상 전처럼 사랑하지 않음을 의미했다.


그것이 나이던 상대이던 잡는다고 잡아지는 것도 아니고 미련에 엉엉 운다고 돌아선 마음이 돌아서는 것도 아니다


나는 이로서 갑상선 암을 통해 실직과 이별의 3관왕을 한 번에 해낸 사람이 되었다 암에 걸린 30대 백수는 내가 


생각해도 매력적인 이성이 되기 힘들었다. 그리고 그렇게 스스로를 위로할 수밖에 없었던 거다. 한 친구는 이제 


더 이상 나빠질 일이 없다며 좋은 일만 생길 것이라고 위로했고 많은 사람들이 좋은 말들을 해줬지만 


거울 속 목 언저리에 난 상처를 보고 깨닫는다. 역시 나이를 먹으니 상처가 쉽게 아물지 않는다.


 

쉬는 김에 확실히 쉬고 무언가 성취한다는 성취의 기쁨을 만나기 위해 모터보트 운전면허랑 누구나 조금만 노력하면 


손에 쥘 수 있다는 대형운전면허를 공부하고 있고 인생에 도움이 되는 것과 별개로 당장 무언가를 해야만 하는 


마음가짐으로 몇 개의 자격증에 대해서 공부하고 있다. 어제는 대전에서 포천 집까지 스리랑카에서 잠시 함께한 


형이 병문안을 와줬는데 까미노 순례길에 대해서 그리고 이렇게 어려운 상황에서 주위 인연을 정리하는 법에 대해서 


조언을 해주고 갔다. 이렇게 내가 어려운데 따듯한 말 한마디 건네지 않는 사람과 같이, 그리고 오래 함께 같은 길을 


갈 필요가 없는 것 이었다. 인생의 울타리가 이렇게 줄어들지만 울타리 안이 더욱 견고해지는 계기가 되라는 충고가 


가슴에 와 닿았다.



제주도에 광어도 잡으러 가고 싶고 블라디보스톡에 러시아 게도 먹으러 가고 싶다 네팔 안나푸르나도 다시 가고싶고 


까미노 순례길도 가고 싶어졌다. 30대 백수 암환자지만 주머니에 돈이라도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사는게 정말 별게 없는데 스스로 뭔가 아는 양 나름 부지런히 살아왔던 그동안의 시간이 참 재미있다

 

아직은 추억을 되돌리면서 사는 나이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생각에 잠기는 시간이 많아서 일까 추억들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추억을 발판으로 더 재미있는 인생을 위해서 좋은 친구들과 함께.......

 

오늘이 행복해야 내일도 행복할 수 있는 거고,


만원으로 행복하게 놀 수 있어야 십 만원으로 행복하게 놀 수 있는 거다.

 

다시금 삶에는 정답이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모두 행복하시길!

 

자 나도 여러분도 모두 건투를 빈다. 인생이 뭐 있던가. 모쪼록 암과의 인연은 이생에 여기까지이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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