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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파라 생활 2015년 2월 13일 스리랑카







밀리고 밀리던 최종시험이 드디어 다가왔다  원래는 12월 대선으로 밀리고 1월중순 그리고 결국 2월 중순이 되어서야 

시험을 볼수있게 되었다 덕분에 아이들은 학교에나와서 연습을 핑계삼아 많은 일들을 해냈다

시험감독관은 인근 바둘라에서 온 용접 선생님이었는데 함께 차를 마시면서 


스리랑카 용접 수준에 대해서 많은 정보를 얻을수있었다  장비와 시설로만 본다면 콜롬보 다음으로 우리기관이 맞는것 같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감독교사가 아이들보다 조금 일찍와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것도 나말딸라우 아이들이 버스가 늦어지는 바람에 조금 늦게 되어서 감독교사에게 미안했다







- 이선생님은 사진을찍을려고만 하면 눈을 지긋이 감는 바람에 모든 사진이 눈이 지긋이 감고있는 모습이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도중 지금은 관리요원으로 있는 선배단원이 근무했던 기관에서 감독관이 온 것을 알고

더욱더 재미있는 이야기를 나눌수있었고 지금은 관리요원인 선배단원의 단원생활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들었다 

흥미로운나머지 읍내에 데리고나가서 점심을 쐈다 


아이들에 체벌에 조금은 적극적인 나는 다른 학교 용접선생들의 체벌스타일을 물어봤고 스리랑카 기능대학의 체벌정도는

귀비틀기와 회초리 수준의 가느다란 막대기로 무차별 휘두르기 정도라고했다 








시험에 대해서 고민을 많이했었는데 시험은 무난했다 아크도 가스도 무난했으나 

가스용접기가 하나밖에없는 관계로 다음날 오전 두시간정도 연장해서 가스용접 시험을 봤다 

가스용접기가 부족한걸 알았지만 사양되는 길의 가스용접기를 사기 꺼려해서 안샀는데

하나더 살걸 그랬나 하는 생각을 해봤다 

아크보다 가스용접 비드가 훨씬예뻤다 고생한 보람 여기서 찾는다 기분좋다








학교 공사는 마무리되어간다 아니 마무리되었다고 보는것이 옳다 간단한 페인트 작업이 남았는데

이마저도 코이카 로고를 박는 일이 남았다 그동안 개강한지 2주가 다되도록 일만시키고 신경써주지 못한 신입생들

신경을 써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열두명으로 시작했는데 여덟명이 남았다 원래대로 라면 여덟명이 적당하지만

늘어난 기계와 장비로는 열명정도가 적당한것 같다 어차피 오레벨(스리랑카 중졸시험) 떨어진 녀석들이 

몰려드는 4월달 후기모집에 최고 인기과가 용접과라니 후기모집을 기대해봐야 할것같다 






요즘 집뒤에서 오리랑 닭이랑 싸움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칼무나이에서 사온 다섯마리오리중에 최후에 하나 남은 오리로

귀한손님 오면 잡아서 먹을 1순위 오리였는데 우리집 암닭을 노리고 놀러오는 옆집 숫닭을 제압하는 재주가있었다 

옆집 숫닭이 놀러와서 병아리때부터 키운 나의 암닭들이랑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것에 대해서 굉장히 오묘한 감정을 

가지고 있었는데(굉장히 유쾌하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굉장히 불쾌하지도 않았다 그냥 오묘했다) 오리랑 닭이랑 싸움이 심했다

시작은 항상 숫닭이 콕콕 오리를 건드리면 오리가 숫닭과 혈전을 벌이는데 죽을 만큼은 아니고 매번 기절할만큼 패주는것같다

옆집아이들도 숫닭이 일방적으로 당하는게 아니라 어느정도 대등세를 보이다가 매번 오리에게 지게되니까

'이번에는 어떻게 안되나' 하면서 자기네 닭을 응원하고 나는 언제나 오리가 이기니까 '어차피 이기는 싸움을 보는'

당연한 재미로 이싸움을 본다 




방금 아이들이 떠났다 

최종시험을 보고 바로 콜롬보 인근에 있는 한국 회사에 여섯명이 취직이 되어 바로 올려보내기로했기때문에 

시험을 마치고 이틀 쉬고 아이들은 방금 올라갔다 (쟈머러는 한국어반으로 진학했고 하샨은 스리랑카 전력에 취직했다)

급하게 읍내에 나가서 양말 세켤레랑 나름 멋들어진 카우보이 모자 그리고 레드불을 챙겨서 여섯명 아이들에게 줬다


암파라에서 콜롬보는 밤버스로도 아홉시간 정도 걸리는 먼거리니까 사낏네 아버지가 나오셔서 사낏을 마중했다 


콜롬보에가면 어렵고 힘든일이 많을 테니까 꾹참고 버티라고도 말하면서도 아이들이 너무 큰 고생을 할까봐 걱정된다

'야 일하다 힘들면 접고 내려와라 다시 미그랑 티그용접 배워서 다시 좋은데 취직하자' 라고 말했다가 

그냥 다시 이악물로 버티라고 말하고....


이별에 순간에 대해서 늘 연습했기때문에 감정이 복받치거나 하지는 않았는데 내 발등에 이마를 대고 절을 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사회로 던져지는 아이들의 미래에 대해서 '사회가 부디 가혹하지않기를' 나의 경험에 비추어 빌고 또 빌었다 

아이들은 그렇게 밤버스를 타고 콜롬보로 올라갔다


내일 새벽에 일찍일어나서 낚시를 가볼까 생각중이다 

현장사업 종료 세레모니는 3월 16일 오전이고 영광스럽게 사무소 소장님께서 와주신다고했다



나는 3월 23일이 되면 스리랑카에 온지 1년이 된다 

아직까지는 (청춘사업을 제외하고) 한국에서 말한대로 살았다 남은 1년 그동안 스리랑카에서 말한대로 살기위해서 

준비하고 많이 생각해봐야겠다 


생각대로 살지않으면 사는대로 생각하게된다 

생각대로 살기위해 호언을 하고 실없는 남자가 되지않기위해 그말을 지키면서 산다

내가 약해진다고 생각될수록 호언을 더 많이, 더 크게 하고 많이,크게한 호언만큼이나 더 치열하게 지킬수밖에 없게 

되는것같다


 실없는 사람이 되기에 비겁한 핑계나 변명이 비루하다 

생각대로 살지않으면 사는대로 생각하게 되는것은 맞는말인데

청춘사업은 아닌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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