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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파라 생활 2015년 5월 27일 스리랑카



네팔에 지은 집과 연결이 닿았다 더이상 밤잠을 설칠일이 없겠다 집도 잘있고 아이들도 사람들도 수녀님도 잘계시다는 소식을

접했다 큰 시름 덜었다 


다들 고생많다 바쁘겠다 힘들다 라는 말로 요즘의 나를 위로해주는데 정작 본인 스스로는 바쁘다거나 힘들다는 생각을 안해봤다

혼자하는것처럼 생색은 다내는 행사준비도 막상 뚜껑을 열어보면 함께 움직여주는 동료단원들이 있고 함께 행사를 진행하는

일본봉사자들 역시 말그대로 '봉사자' 이기 때문인지 불필요한 자존심이나 감정노동 이런게 없어서 일하기 참 편하다 


핸드폰 카메라가 영 상태가 좋지않기때문에 고칠수있을지 의문이다 요즘 부쩍 핸드폰 사진이 아쉬운 상황이 많다


이래저래 한가하지만은 않았던 오전을 마치고 큰맘 먹고 산 알곤 레귤레이터를 들고 학교에갔다 레귤레이터가 고장나서

용접기 한대를 못써먹고 있는상황이어서 학교에 사달라고 일주일전에 신청을 했는데 앓느니 죽는다고 기다리다가 그냥 내돈으로

사와버렸다 가격이 7천6백루피, 한국에서 같은제품이 만육천원대인것을 감안하면 네배정도의 가격차이 .. 하지만 어쩌겠는가

여기는 스리랑카고 더구나 암파라인것을


미리와서 옷갈아입는 아이들에게 준비체조를 시키고 새로산 알곤 레귤레이터를 설치하고있었는데 커다란 군용트럭이왔다

짙은 군청색의 포장덮힌 군인트럭, 그리고 군인들이 주섬주섬... 내가 두명은 들어가서 끓여질수있을 크기의 솥단지를 내리기 

시작했다


한개.... 두개... 세개.... 네개.... 자신을 주임원사(sergeant major)라고 밝힌 정복입은 사내가 어수룩한 영어로 냄비를 

용접해줄것을  부탁했다 


내려지는 냄비와 군인들을 보면서 문득 군시절이 떠올랐다 고달펐던 철원의 겨울이 떠올랐고 그때 내가 했던 고생만큼이나

여기 이녀석들도 고생하고있을것을 생각하니 절로 웃음이 나왔다 더욱이 이 제안을 거절하기에는 나와 주임원사의 대화를 

냄비들고 바라보고있는 짬밥이 한참은 안되어보이는 병사들의 눈망울이 안타까웠다 두말없이 한다고 하고 솥단지를 받아들었다 


웃으면서 내일 아침쯤에 찾아가라고 말을 전하고 군인들을 보내고 나니 솥단지가 참 웃기다... 구멍난 솥단지 공짜로 때워달라고 

보내는 솥단지면 적어도 그을음은 벗기고 어디가 새는지는 표시해서 가져왔어야지....

아이들과 물을 부어가면서 구멍난 곳을 찾고 매직으로 표시한다음 용접부위 주변을 그라인더 브러쉬로 닦아내주었다 

어차피 이러한 과정도 배움의 과정이라고 생각하고 진행되는것이니까 아이들과 즐거운 마음가짐으로 일했다 어차피 

알루미늄 용접만 보여주기에는 할말도 많이 없으니까



티그용접으로 두개 미그용접으로 두개 때우면서 어떻게 용접하는지 보여주는데 집중했다 어차피 어려운용접이 아니었으므로

용접은 간단하게 끝났는데 냄비에 물채우고 물이 새나 안새나 확인하는게 일이었다 (냄비가 워낙 컸기때문에)

보조교사가 군부대에 전화를 걸어 저녁늦게라도 가져갈것을 이야기하는동안 꽤나 높은계급의 군인이 승용차에서 내려서

악수를 청하면서 고맙다고했다 나도 얼떨결에 악수를 하고 아이들은 멀리서 코카콜라를 먹고싶다는 제스쳐로

무언가를 받아내야하는것이 아닌지 눈치를 살피고있는동안 


나는 군부대 안에서 낚시를 하게 해달라고 했다 지난번 이륵까뭄이라는곳을 지나다가 물위에 허름한 정자가

낚시하게 좋은 정자가 있었는데 군대 캠프안이라고 거절당한적이 있었다 나는 거기에서 낚시를 하고싶다고 말했다 

곧 자기 부관을 시켜서 음료수를 사오게 하더니 자기가 낚시를 허가해주겠다며 보조교사에게 전화번호를 주고갔다

앞으로 낚시하고싶으면 언제든지 보조교사를 통해서 전화하고 오라고했다 


의도치 않은 알루미늄 솥단지 용접으로 꽉찬하루를 보내고 학교를 나서는길, 옷에뭍은 솥단지 검정때문에 정문 경비아줌마가

불쌍하다면서 안쓰러운 눈빛으로 바라본다 닭들이 낳은 계란을 챙겨서 가방에 넣는데 아줌마가 교장선생님 이야기를했다

이정도 행사면 교장선생님이 구경오실만 한데 그러고보니 선생님이 오지않았다는 생각을 그제서야 해냈다

완벽하지 않은 현지어로 들은바 타밀족 무슬림이 종교인 교장선생님은 내전때 친지들을 잃었고 그래서 싱할러족 군인들을

싫어한다고 했다 


교문을 나서는 발걸음이 가볍지 않다 전쟁은 끝나도 상처는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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