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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파라 생활 2015년 8월 31일 - 8월 바티칼로아 해비타트 스리랑카



- 공사 종료를 알리는 기념사진 촬영이 있기까지  참 많은 사건과 생각들이 있었다.  모두가 즐거웠다면 그것으로 되었다 -




처음 8월 해비타트를 준비한건 6월 말쯤이었다 이미 스리랑카 해비타트 사무소와는 지난 4월 해비타트활동으로

면이 터있는 상황이었고 4월에 헤어지면서 한달전쯤에 미리 준비를 하면 서로 행사를 진행하는데 매끄럽지 않겠느냐는 

말을 나누면서 헤어졌던것을 기억했던 터라 조금 미리 준비를 시작 했다


4월에 역전의 용사들중에는 이미 귀국했거나 귀국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래도 주축이었던 "나"를 비롯한

바티칼로아 식구들이 있었기때문에 7월 무렵의 준비단계는 큰 어려움 없이 잘 진행되었다


에초에 해비타트 활동에 앞서 코이카 단원활동에 지장을 주지않는 범위인 기능대학 방학시즌을 고려했기 때문에 

4월과 8월 방학을 활용하기로 한것인데 기관 학사일정은 "원래" 15일부터 30일까지가 방학이었고 

기관활동에 영향을 주지않는 24일부터 28일까지, 해비타트 현지 사무소와 논의를 할때까지만 해도 

우리의 해비타트는 너무나도 무난했기때문에 긴장에 끈 같은것은 아예 생각지도 않았다 



첫번째 파도 - 스리랑카 총선으로 인한 학사일정 변경


지난번 대사배 태권도 대회를 하면서 의회가 해산되어 스리랑카 총선이 예측되었지만 그 시기가 8월 17일이 될줄은 몰랐다 

스리랑카 코이카 단원들은 급변하는 정세에 대처하기 위해 임지대기를 실시했으며 총선에 따라서 방학이 한주 앞당겨졌다 

(15일 부터 29일 -> 8일 부터 22일) 애초에 코이카 사무소에 이번 해비타트 활동을 개인휴가를 사용하지않는 공무 처리 요청을

하게되는 가장 큰 근거가 "단원 활동에 지장을 주지않는 범위" 였기때문에 방학이 변경된 지금 해비타트 일정을 변경하던지

꼼작없이 개인휴가를 사용해서 이번 해비타트 봉사활동을 참가해야했고, 총선이전은 불안한 정국으로, 총선 직후는 

바티칼로아 힌두 지역행사로 날자조절의 탄력성을 잃었다 또한 12월 방학은 스리랑카의 기나긴 우기 이기때문에 날짜는 

이번 24일부터 28일까지로 정할수밖에 없었다 이대로 엎어야 하는것인지 아니면 개인휴가로 강행해야 하는것인지를 두고 

행사를 준비한 사람으로서 큰 고민을 했지만 모두의 깊은 고민끝에 우리는 그냥 가기로했다 


해비타트 하러 스리랑카에 온것은 아니지만 하기로한 해비타트를 엎는것도 아닌것같았다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첫번째

파도를 함께 넘었다 





- 원래는 뽈 이라고 요리에 쓰는 코코넛 속살이었는데 월요일 오전 밥이 올때까지 먹을게 없었다 사상초유의 사태로 

이걸 긁어먹었는데 워낙에 힘든상태에서 먹는 뽈 이었는지 고소한 누룽지 같았다 물론 다시먹으라고 하면 안먹는다 -




두번째 파도는 소소한 휴가문제였다 


이번에 참가신청을 한 신규단원들을 중심으로 스리랑카 파견기간이 6개월이 안되어 국내휴가를 사용할수없었는데 

(국내휴가야 규정이 해외사무소마다 다 다르다) 이정도 문제야 해결해 주실수있는분과 연락가능한 사람이 있기때문에 

비교적(?) 작은 파도를 헤쳐 넘었다. 코이카는 휴가에 대한 규정이 좀 까다로운 편이고 제약이 많지만 자이카는 그냥

현지 코디네이터에게 해비타트 하러 간다고 하고 전화보고하고 해비타트 참가했다. 반면 코이카는 기관장 허가서 및

본인 휴가공문 이래저래 준비할일이 많다 





- 이번 해비타트로 친구먹은 골 축구단원 자이카 준페이 파견 한달밖에 안되었는데 전화한통하고 해비타트 참가했다 반면

우리는 준비할것, 해야할일들이 조금 많은 편이다 -




세번째 파도부터는 바티칼로아에서 시작했다 


타타에서 만든 조그만 트럭을 빌려서 바티칼로아 시니어 선생님 댁으로 올라갔는데 짐을 풀고있는중 부재중 문자가 와있는걸 

봤다. 해비타트 사무실이었는데 어차피 짐풀고 바로 현장 보기로했으니까 사무소에 연락하기보다 짐을빨리 풀어야지 하는순간 

문자가 하나 더왔다 "급한일이 생겼으니 이메일을 확인하라" - 짐풀다말고 해비타트 사무실로 가면서 이메일을을 확인했는데 

원래 공사하기로했던 아이양가니 라는 마을의 두 집 주인이 우리의 도움을 거절한다 면서 우리보고 세시간거리의 트린코 말리로

이동이 가능한지 묻는 이메일이었다 


미팅을 하게되니 참 재미있는 상황이었다 이번행사는 코이카 자이카 그리고 교민까지 함께하는 행사에다가 운송수단 및 숙소가

(이때 까지만 해도) 예약이 되어있는데 갑자기 상황이 바뀌게 되면 답이없다고 찬찬히 설명했다 한편으로는 트린코말리 단원에게

연락해서 숙소를 타진했는데 워낙 트린코말리가 시즌이기때문에 숙소는 매우 비쌀것으로 예상되었고 이래저래 암파라에서 바티

칼로아로 준비해온 나에게 진퇴양난이었다 그나마 재미있는것은 멀리서 오는 자이카나 코이카 단원들은 어차피 오랜시간

버스를 타고이동하는것이기 때문에 바티칼로아나 트린코말리나 상관없다면서 긍정의 에너지로 화이팅 했다는점. 


그런데 이 두 집주인이 우리의 도움을 거절한 이유가 재미있었다 어디서 이상한 소문을 듣고 온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우리가 집주인을 사진촬영하고 이것을 인터넷에 올려서 돈벌이에 사용한다는 이상한 소문이 바티칼로아에 돌고있었고 

그럴바에 그냥 차라리 도움을 거절하겠다면서 집주인들이 해비타트 사무실에 직접 연락을 해온것이었다 

해비타트 담당자 역시 해비타트를 하면서 처음생긴 이 일에 당황을 했고 그래서 우리에게 트린코로 가거나 행사를 엎자고

제한했던것이었다 


행사를 준비하는 나의 어려움이나 우리가 무엇을 하러 이곳에 왔는지, 봉사활동을 하는 와중에 개인휴가를 봉사활동에 소비하는

어려움을 알아준 해비타트 담당자 푸쉬바에게 다시한번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그는 직접 자기가 현장이 될만한 집들을 급하게

섭외했고  우리가 투입해서 일할수있도록 자재 수급을 도와줬다 그래서 엎기로한 바티칼로아가 살아났고 다시 우리는 희망

을 가지고 시작할수있었다 



장소는 바티칼로아 공항근처 비치칼무나이,  장소가 나왔기때문에 현장답사를 실시했다 






- 물수리가 쉬는 바닷가 라군 근처 비치칼무나이 이렇게나 멋진곳에 우리가 지을 세곳의 집이 있다 -






- 그동안의 스리랑카의 생활과 4월의 경험으로 이제 현장보면 대충 뭘해야 할지 감이 온다 그래서 질문도 참 잘한다

다음벽돌은 언제오는지부터 벽돌을 붙이는 기능공 투입일정까지 확인한다








- 부지런히 파도를 넘었기때문에 여유가 있는줄알았다 그래서 숙소로 사용하게된 시니어 선생님 댁 근처 바다에서

낚시를 했다 걸어서 3분거리에 이런 라군 포인트가 있는데 새우미끼로도 잘잡히고 오징어로 해도 잘 잡혔다 입질도 맛보고

손맛도 보고 이래저래 앞으로 남은 파도는 생각치도 못한채 낚시를 즐겼던것 같다 




네번째 파도 - 생각치도 못한 파도가 원래 더 크고 무서운것


낮에 나를 쥐고 흔들었던 미팅과 답사를 마치고 아름다운 마무리의 낚시까지 마치고선 이제 집에서 쉬려고 하는 순간이었는데

시니어 선생님이 살고있는집 집주인이 찾아왔다 그리고 잠시 시니어 선생님과 면담을 하더니 충격적인 발언을 한다 


"너희들이 스무명 정도가 온다고 들었다 요새 바티칼로아의 호텔가격은 최소 하룻밤 3000 루피다 우리집은 그냥 한사람당

하룻밤에 500루피만 받겠다" 


이글을 쓰고있는 지금도 아직 복잡한 감정을 정리하기 쉽지않다. 이미 1년치 집세가 결제가 끝난집에 손님이 왔다고 추가요금을

요구하는것에 대해서 아예 이해를 못하는것은 아니다  한두명도 아니고 스무명정도의 사람이라면 아무래도 조금 혼잡스러움이 

있을테니까 일주일에 다만 얼마간이라도 지불할 의사가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숙박업소처럼 지불하게되는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애초에 트린코말리로 안정하고 바티칼로아로 정한 큰이유중에 하나가 바로 이 숙소문제때문이었는데

시니어 선생님댁은 화장실도 두개 방도 넓어서 스무명까지는 무리더라도 단체가 지내기에 불편함이 없었다 

그런데 집주인이 터무니없는 요구를 한다 한달에 집세로 2만루피 내외를 내고있는데 집주인은 5만루피 이상을요구했다 

스리랑카 공무원 한달월급이 2만루피가 채 안된다 아무래도 이 행사를 통해 한몫 단단히 잡으려는 심산이 눈에 보인다


정확히 '너희들이 지금 이집아니면 어디서 방을 구할수있겠느냐는 태도' 가 정확히 마음에 안들었던것 같다 

외국에서 영어못하고 현지어 못하면 결국은 만나는 인간관계가 좁아지고 대안없는 선택을 하게되는 경우가 생기는데

집주인은 나를 한참 잘못 이해했다 우리의 상황에 대해서 (봉사중에 또다른 봉사활동을 하고있는점) 과 스리랑카에서

소외받는 동부지역 타밀사람들을 도우러 왔는데 같은 타밀사람인 당신이 어떻게 그럴수있느냐는 감정어린 호소도

통하지않았다 되려 자신이야말로 차와 집이 있지만 은행에 부채가 많은 사람이기때문에 불쌍한사람이니까 자신을 

도와달라고했다 


집에 전에 살고간 미국인 선교사 부부사진이 영정사진처럼 걸려있는데 집에갈때 티비와 세탁기를 두고

갔다고했다 그 미국인 선교사들이 어떤 생각에서 세탁기와 티비를 두고갔는지는 모르겠으나 잘못주고 가도 한참 잘못주고

갔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가장큰 문제는 원래 집에 살고계시던 시니어 선생님의 입장이었다 우리야 현지인들과 트러블이 있어도 해비타트

종료후 임지로 복귀하면 그만이지만 남은 사람에게는 일상생활이 바뀌게 되는 큰 변화임에 틀림이없다 

할아버지라고 부르면서 가족같이 대했다고 하셨는데 마음을 이만저만 상하신게 아니다 현지인과 엄마아빠 할아버지라고

부르면서 친하게 지내도 결국 돈이 오고가야 할때는 할아버지고 엄마아빠고 없이 당신은 그냥 외국인인점을 잊지말길 바란다


이집에 대한 언급은 여기서 마치도록 하겠다 이틀밤을 술로 지내고 방법을(현지인과의 관계에 대한 생각)생각해보았지만

뾰족한 수가 없다 섣부른 참견이 관계를 더 악화 시킬수있다고 생각했다 머물지 않을것이라면 빨리 이동하는것이 옳다고 

생각했는데 다행이 암파라 기관장의 도움을 얻어 사회복지시설 비슷한곳에 숙소를 정했다 





- 남자들은 세계어딜가나 비슷하다 공이나 제기처럼 발로 차는것을 좋아해서 여자들이 샤워하기를 기다리는동안 제기차면서 

놀았다 자이카 축구단원이나 코이카 태권도 단원이나 제기를 나보다 못 했다는것은 공공연한 비밀

숙소를 옮기고 나니 옮기길 잘했다는 생각이들었다 하룻밤 300루피라는 가격부터 샤워장, 세면장도 넓고 이게 모두다 

차량을 안정적으로 미리 섭외했기때문에 숙소가 변경되어도 무리가 없을것이라고 생각하고 안도할수있었던것이다


다섯번재 파도 - 파도는 차근차근 순서대로온다 

숙소에 짐을 풀고 청소가 되기를 기다리는순간 차량을 예약해주기로했던 현지인에게서 연락이왔다 한시간 반거리 쌈만뚜라이에

사는 사람인데 바티칼로아로 직접올정도면 일이 틀어진것이 틀림없다 점심도 못먹고 함께 길을 나섰다 

내용인즉슨 차량 섭외가 되었던 회사측에서 우리가 외국인 인것을알고 사전에 협의된 금액인 하루 5천루피에 못해주고 추가 

금액을 요구했다는것이다 그래서 자신의 친구인 바티칼로아 지역경찰서장을 만나러 가서 조언을 구하기로했다 

워낙에 시작전부터 여러 파도가 왔기때문에 참가자들에게는 별도로 말하지않았다 그냥 조용히 버스문제 확인한다고만 

하고 나와서 상담을 시작했는데 되려 트랙터에 매달린 츄레라가 운송료가 높았다 경찰서장에게 긴긴 하소연끝에 

병원 출퇴근 통근버스를 구했고 이렇게 다섯번째 파도도 넘길수있었다 





- 파도를 넘고 출정식날 아침 버스를 기다리면서 사진을찍었다 역시나 버스는 제시간에 오질않는다 사진 오른편 아래 

벽돌을 나르기위한 지게가 보인다 4월에는 두개를 만들어서 날랐는데 이번에는 네개를 만들었다 





- 첫날이 시작되고나서 열심히 일했다 다행이 나는 내임무도 잘 알고있었다 일하러온사람들이 일할수 있도록

일이 잘되고 좋게되어야 보람이 더 커진다는것을 나는 잘이해하고있었으므로 일이 끊이지 않으려고 항상 노력했다






- 파운데이션을 하기위해 파둔 집의 기초 저 돌을 다 우리가 날랐으며 다 쌓았고 안에 흙도 다 채워넣었다 

아무튼 집짓는 일은 작은일은 아니었다 누군가에 기억에 오랫동안 남는일이 작은일이 아니듯이 









- 홍 엔터테이먼트 회사놀이를 했는데 신입사원중 누군가가 악덕사장 물러가라면서 노조결성을 시도했다

악덕사장 물러가라는 불손한 문구를 적은 지게사진은 제외하도록 하겠다 

지게에 이름을 적고 글귀를 적으면 지게에 대한 애착이 생기고 그래서 일하는데 더 깊이 빠져들기를 바랬다 











- 매일 매일 일과는 비슷하다 아침에 일하러 가기전에 현지식을 먹고 일하다가 점심에 현지식을 먹고 숙소로 돌아와서

샤워와 빨래를 함께한다 저녁에 그리고 또 현지식.. 운이좋으면 총무님께서 준비한 한국반찬 두어개 








- 나온배를 감추려고 부던히 힘을주고 찍었다 부지런히 일했다 

더운만큼 햇볓이 강했던만큼 몸이 힘든만큼 변태는 아닌데 행복함을 느낄수있어서 좋았다








- 모이게된 동기도 참 재미있다 코이카 봉사단 자이카 봉사단 한인회 학생까지 우리는 참 여러곳에서 다른삶을 살다가

2015년 8월 바티칼로아에서 만났다 다른사람들처럼 만나고 헤어지기만 한것이 아니라 만나서 함께 뜨거운 땀을 나누었기에

우리는 다른인연보다 조금더 진하다 











- 월요일 부터 수요일까지 근육통을 달래느라 맥주와 아락을 마셨는데 여자단원들이 함께할수있는 의미있는 시간을 건의했다

결론은 오이잘라서 얼굴에 오이맛사지를 다같이했는데 처음에 내가 붙여주가다 못붙인다고 구박받고 결국 여자단원이 붙여줬다








- 금요일 오후에 행사를 마치고 근처 등대에가서 땀에절은 몸을 담궜다 사진속 자이카 친구들은 말이 백퍼센트 통하지않았음에도 

행사의 취지를 이해하고 잘따라와준 형제같은 사람들이다 모두 고생이 많았다







- 골에서 축구를 가르치는 준페이의 가장큰 매력은 홍콩 느와르나 일본 야쿠자를 연상시키는 얼굴에서 영구같은 행동이 

나온다는것, 마지막날 아껴둔 회비 총출동해서 피자 치킨 맥주 신나게 먹었던것같은데 나는 일주일 피로가 한번에 몰려오는 관계로

열시도 안되어서 일찍 잠들어버렸다







-마지막 기념사진을 찍는 포토존에 코카콜라 로고, 우리는 해비타트를 하면서 시원한 콜라만큼 매력적인 음료가 없다는걸

다시금깨달았다 지치고 목마를때 콜라만큼 한번에 청량감에 젖게 해주는 음료가 없지싶다 특히 스리랑카 여름의 해비타트에서



행사를 진행하면서 소소한 파도들이 있었지만 시작하기도 전에 몰려든 파도때문에 상대적으로 약하게 느껴졌고 또 쉽게 넘었다

행사 시작전 북한의 로켓포 도발이 있었는데 그때심정은 이랬던것같다 " 하다 하다가 이제 김정은이까지 나를 말리려고 드는구나"

그러나 해비타트도 북한의 도발도 해피앤딩으로 끝났다 


마지막날 건배를 하면서 다들.. 멋진 우리의 8월 기억을 나눴다 행사초반 힘들다던 단원들도, 오게된 이유를 모르겠다던 단원들도

모두 제각각 해비타트의 의미를 찾은것같아서 행사를 준비한 사람으로서 큰 보람을 느낀다 기쁨은 나누면 크다는데 

스무명이 나누게 되니까 너무나도 기분이 좋은것같다 


해비타트를 하게되는 이유에 대해서 다시한번 생각해봤다 스리랑카 현지인에게 콜라를 얻어먹는것은 엄청 특별한 일이다

하루임금이 천루피(우리돈 팔천원)이 안되고 한달월급이 2만루피(우리돈 16만원정도) 가 안되는 사람이 태반인곳에서

한병에 200루피(1600원)짜리 콜라가 지니는 의미가 어떠한 것인지 스리랑카에서 살아본 사람은 안다 

뜨거운 태양아래에서 박살나는 땀방울을 보면서 피로감을 느낄때 현지인 할머니가 꼬깃꼬깃한 돈을 꺼내서 

손주에게 심부름 시키는 그 시원한 콜라는 어쩌면 내가 이 뜨거운 적도의 복판에서 고통을 찾아 헤메에게 만드는 이유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봤다


그리고 또하나 우리가 짓는 집이 현지인들에게는 안정된 보금자리지만 우리에게는 영원히 남을 기념비같은 존재라는것 

세월이흘러 함께보낸 시간의 즐거운 기억은 잊혀지더라도 집은 영구적으로 남을테니까 부디 그안에서 모두 행복하길 바랬다


일상으로 돌아왔다 자이카 두명 후배단원 세명과 암파라로 내려와서 오븐에 고기구워먹고 쉬다가 일요일 밤이나 되어야 

나혼자만 남고 모두 헤어졌다 


월요일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목에서 더욱더 열심히 해야한다는 활력 절반.  힘들어서 지치는 피곤한 마음 절반



잊을수없는 2015년 8월 바티칼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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