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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파라 생활 2015년 12월 3일 스리랑카


요새 참 바쁘다 전에는 콜롬보를 오고가는 장거리 버스안에서 생각에 잠기거나 깊은 고민을 풀어나가는 시간으로 ....

최소한 차창밖 달빛아래 스쳐지나가는 풍경들을 바라보면서 얼마 남지않은 스리랑카에 대해서.... 암파라에 대해서 

정리하는 시간으로 보냈었는데 요새는 차에타고 "오늘은 무슨 타밀 영화를 틀어줄까" 버스앞쪽 모니터를 슬며시 바라보다가

스르르 잠이들어버린다 암파라에 처음왔을때 낮에... 그것도 승합차로 편하게 오는길에도 굽은 도로와 덜컹이는 의자때문에

그렇게 고생했던길을 이제는 중간에 휴게소에서 내릴지 말지를 고민할정도로 잘잔다





꿀잠을 잘수있는 이유중에 하나는 한국 살다 돌아온 옆동네형 아부 형이 침대버스를 하나 "촥~" 하고 구매했기 때문인데

버스가 한대밖에 없어서 버스 운행일정이 안맞으면 전처럼 의자에 앉아서 올라가야된다 처음에 몇번 침대버스를 타다가 

일정때문에 의자버스를 이용했는데 사실 의자버스나 침대버스나 큰 감흥은 없다 침대가 있으면 좋은것... 없으면 아쉬운것

스리랑카 암파라 1년 9개월차가 이렇게 무섭다






11월 초에는 참 많은 일이 있었다 뽑히기 힘든 후임단원을 이야기하면서 모라투와 빈민가로의 재파견을 요청하는 편지를 적었는데

여러가지 의미로 재파견 불가 판정이 났다 현지 교사는 없는데 3월까지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낼까 고민하기에도 잠시 

대학교 사회봉사단 학생들 현장 사업을 도와주기로했다 스리랑카 스타일로 하게되면 싸고 좋지만 한국 사람이 일을 했다는

표시가 안나는... 돈만있으면 누구나 다할수있는 현장 사업보다는 "나와 당신이 지금" 이 아니면 할수없는 프로젝트에대해 고민하다

멋들어진 공원에나 있을법한 철제 벤치를 생각해냈다 아이들이 그동안 밥먹을때 매번 학교 가운데에있는 큰 바위나 여기저기

쫒겨다니듯 교실을 전전하며 밥을 먹었는데 (스리랑카 학생들은 손으로 먹기때문에 많이 흘리는 편이다) 이 프로젝트가 

끝나면 좀 편하게 앉아서 밥먹고 쉴수있기를 바란다 


11월 중순에는 한국에 잠시 다녀왔다 코이카 봉사단원은 국외휴가가 2년을 통틀어 21일 허가되는데 국외휴가를 떠나는 모든

제반경비가 단원개인 사비로 충당되어야하고 수업일정을 맞추다보면 나가기가 힘들기때문에 국외휴가 나가기가 쉽지않은데

추석때 인연을 맺은 한의사 형님들의 초대로 겸사겸사 오일동안 한국에 다녀왔다.  과하면 탈이난다고 

인천에서 내장탕을 먹고 눈물이 날뻔했는데 결국은 술병이 나는 바람에 오랫만에 한국 병원도 구경해야만했다 

오랫만에 만난 사람들과 만나지못한 사람들... 다들 그대로 인것같아서 참 좋았다 언제나 찾아가도 변하지않는 친구들과

아버지 어머니 한국을 비운 1년 9개월이 무색할만큼 잘있다가 잘 왔다 


한국방문의 가장큰 성과는 외할머니의 평생 숙원사업인 막내이모 결혼식에 참석할수있었다는 점과 한국으로 돌아가도

백수신세는 면했다는점 (아직 한참 부족한 나를 찾아주시는곳이 있는게 참으로 고마운일이다) 두가지인데 이 성과를 

제하고서라도 만나야할사람을 못만난것 ... 아쉬움이 많이 남는것...핸드폰을 고치지 못한것...스케일링을 받지 못한것...

헤어질때 엄마의 손을 잡아주지 못하고 헤어진것........뭐가 그렇게 바쁘고 힘들었던것인지....휴가가 늘 그렇듯 아쉬움만

가득남는다


사실 국외여행 국외휴가는 호주에 있을때 자주갔었다 살던곳에서 호주의 대도시 퍼스보다 발리가 가까웠고 8주 일하면

1주 쉬는 조건으로 근무했기때문에 이 1주일 휴가때 물가가 비싸고 밋밋(?)한 퍼스보다 발리를 자주 여행했던 편이다 

그런데 매번 돌아오는 비행기가 착륙하는 순간이 싫었다 착륙전 기장이 말해주는 도착지점의 날씨 시간 ...이런 일련의것들이 

삭막했던 동네의 풍경처럼 하늘에서 봐도 밋밋한 동네의 풍경처럼 막연했다

특히나 비행기가 착륙하는 순간 비행기 기체의 떨림이 내가 곧 일해야 한다는 치떨림처럼 거북스럽기 그지없었다


사실 이번 한국으로의 휴가에서 가장 큰 걱정은 돌아오는 비행기가 착륙하는 순간이었다

발리에서 호주로 돌아가는 비행기 안에서처럼 몸서리 쳐지는것은 아닐지...

너무 오랫만에 타는 비행기 이기도했고 2014년 3월 파견될때 콜롬보 공항은 설레임으로 가득차있었기때문에 아무것도

느낄새가 없었는데 저멀리 콜롬보 시내 불빛이 보이고 비행기가 착륙하려고 천천히 선회하는 순간부터 

착륙하는 순간.... 비행기문이 열리는 순간까지 천천히 느끼고 다시금 바라봤다 

남은 4개월동안 최선을 다할수있을까? 매번 끝이 매끄럽지 못했다는 스스로의 평가에서 이번만큼은 스스로 자유로울수있을까?


콜롬보에 도착해서도 정신없었다 멍하니 쉬다가 국외휴가 후유증에 젖어버리느니 차라리 바쁜게 낫다고 생각했다

아침에 도착해서 점심에 사무소에 들러 미팅을 했다 1월에 모라투와로 가지못하게된다면 남는 시간에 대해서 크게 고민했었는데

관리요원 한명이 나에게 협력사업을 제안했고 출국전부터 추진하던 그 회의를 귀국한 그날 콜롬보에서 했다 

내가 생각해도 하루쯤 콜롬보에서 쉬고 내려올법한 일정이었는데 그날로 밤차를 타고 암파라에 내려왔다






암파라에는 나를 대신해서 새마을 95기 상환이가 공구리를 치고있었다 대학생봉사단 현장사업으로 진행하는 농구장공사에서

발을 절룩거리면서 공구리(콘크리트)를 치고있는(타설)모습을 보니까 마음이 짠했다 자기일도 아니면서 그리고 나보다 먼저

1월에 귀국하는 그야말로 말년단원의 투혼을 상환이는 암파라에서 발휘하고 있었다 


이사진을 코이카 스리랑카 단원 커뮤니티에 올렸을때 반응이 궁금했다 내심 말년단원의 투혼을 본보기로

"너희들은 이렇게 할수있느냐?" 라고 타성에 젖은 다른 봉사단원들에게 묻고싶었다 


사실 맨발로 콘크리트 작업을 하는건 위험하다 흔히 세면독이라고 불리우는 급성 피부 질환이 생길수있고 각종 중금속으로

암에걸리기 쉬운 발암물질이 바로 콘크리트다 건축기사 자격증이 있는 상환이가 이사실을 몰라서 맨발로 일한게 아니다

상환이가 가장 염려스러웠던건 현지인들과 또 함께일하는 대학생 봉사단 단원들이었다 


비옷부터 장화까지 비싸면서 품질이 나쁜 현지에서 현지인들은 콘크리트 작업을 논일 하듯 맨발로 밟고 맨손으로 비빈다

큰맘먹고 사줘도 덥다는 이유로 작업할때 안쓰고 집에가져가서 자신의 아들이나 동생에게 주려고한다 

함께일하는 현지인들이 그렇게 일하는데 자신이 장화를 신는게 미안한 마음 ... 그마음을 참 나는 깊게 생각한다

-함께 일하는 나는 당신과 다르지않다는 마음이 바로 봉사자의 마음인것 같았다 


나도 사실 피곤했다 인천에서 콜롬보까지 아홉시간을 날아와서 낮에 회의하고 다시 여덟시간을 버스를 탔다 

새벽에 도착해서 고장난 냉장고안에 상한 음식물을 청소하고 바로 공사현장으로 나갔다 

나를 대신해서 머나먼 암파라까지 와준 상환이에 대한 예의의자 고생하는 봉사단원들에 대한 예의인것만 같았다 






가로 20미터 세로 30미터 콘크리트 농구장 바닥은 그제 완성이 되었다 상환이는 물론 자신의 일정때문에 일요일 오후 본인의

임지로 돌아갔고 콘크리트 타설을 도와주기 위해 스리랑카 각지에서 모인 단원들도 함께 일요일날 돌아갔다 

함께 콘크리트 완성의 기쁨을 나누었으면 좋았을텐데 나와 대학생 봉사단 아이들이 이일을 마쳤다 










그리고 어제 첫번째 골대를 박았고 









오늘 두번째 골대를 박았다 - 저질 스러운 웨이브 미안합니다 너무 즐거웠거든요 :-)




현지에서 이런공사를 하면 육체적으로 그리고 정신적으로 어려운 일들이 오게되는데 갑자기 생각난 몇가지를 적어본다


현지인과의 이해부족 - 작년 내 현장사업을 할때도 그렇고 이번 공사를 할때도 그렇고 학교에 있는 기능직 공무원들을

설득하는 과정이 매우 중요하다는걸 느낀다 우리는 봉사자라는점, 이 현장사업을 해도 그만 안해도 그만인데 학생들을 위해서

공사를 진행하고있다는점(콜롬보 사무소나 한국에 있는 사무소는 서류작업때문에 귀찮다고 싫어한다는 식으로 어필한다),

돈안받고 일하는 우리들은 이렇게 열심히 일하는데 이일이 직업인 당신들은 매번 일에서

빠지려고 노력한다는점 이런 종류의 아쉬움에 대해서 피력하는 한편 이 공사가 끝나면 암파라에 찾아오게될 이득이나 

미래에 대해서 한껏 뻥을 쳐주는것도 중요하다 정해진 시간에 출근하지않으면 하루일당을 감봉처리한다고 교장선생님을

들먹이며 엄포를 놓는동시에 빌리는데 하루단위로 돈이 나가는 콘크리트 믹서기와 스캣폴딩을 언급하며 빨리 진행될수록

돈을아껴서 파티라도 한번 해야하지않겠냐고 당근을 던져야한다


이번에 워낙 빌려둔 기계값 나가는게 아까워서 노무자 네명을 고용했는데 역시나 일당을 당일 지급하니 다음날 하나도 

출근을 안했다 이사람들도 붙잡아 두고 소통을 했다면 달라졌을지 모르겠지만 한국어로 매번 자기소개 하기도 지치는데

하물며 현지인과 현지어로 앵무새 반복하듯 자기소개를...그것도 공사를 진행하면서 하자니.... 소통.. 참 어려운일중에 하나다


한국데스크의 이해부족 - 코이카 현장사업을 하는 사람중에 대다수는 현지업체를 고용해서 진행한다 견적서도 받고 단가도

조사해보지만 우리가 흔히 부르는 건설업에서의 마진이 개도국이라도 무시할수준은 아니다 그래서 현지업체 안쓰고

직접 사람고용하고 자재사서 현장사업을 하게되면 건설업체에 돌아가게 되는 마진으로 현지인들에게 더크고 좋은 

무언가를 해줄수있지않을까 고민하게되면서부터 시작하는게 직접공사인데 데스크에서는 직접공사를 하던 업체를 끼워서하던

크게 신경쓰지않는다(여러분의 세금 이렇게 쓰이고있습니다) 


-나는 작년에 3만불로 용접실 내부 작업 및 새로운 용접장비 다사고 외부작업장까지 마쳤는데 현지업체가 외부작업장 

견적만 2만불, 내부 기계견적만 만 칠천불 불렀었다 


내경우 작년에 콘크리트 타설을하고 삼겹살에 전통주 한잔씩 고생한 일꾼들에게 돌렸는데 이게 경비처리가 안된다고 

그랬다 나는 국민의 세금이니까 알겠습니다하고 넘어갔지만 현지업체를 고용하면 돈은 돈대로 더들면서 콘크리트 

타설하고나서도 술과 고기를 자유로이 먹을수있다니 방법이 많이 잘못된 느낌이다 아무튼 영수증만 있으면 되니까...


더욱이 개도국에서 정말로 필요한건 1차산업에 관련된 농업,기계,용접같은 공업 기초 분야갸 대다수인데 현지에서 하는일이

복잡한 구조물을 계산하거나 만드는 일이 아니다보니 데스크에서 건설 자문을 위해 오신분에게 자문을 구하기도 민망하고 

(이런분들은 보통 한국에서 감리하고 나오시는분들- 구조설계전문같이- 이런분들에게 페인트칠이나 문짝달기 농업용수로같은거

물어보면 치욕을 안겨드리는것같아서 굉장히 죄송스러워한다 ) 데스크에서는 그냥 뭐 별일 아니겠지하고 넘어가버리니까

쟁이- 라고 불리우는 기능공들이 봉사활동와서 하는일에 비해 데스크에 인정을 못받는편이다 


여기에 공사기간 늦어지면 복잡한 현지사정 고려는 눈꼽만큼도 안해주면서 경위서 쓰라고 하고 사유서 제출하라고 하고 

남은 예산 집행 못해준다고 일방적인 통보를 하거나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자고 여기서 이러고 있나 하는 생각이 

현지인들때문도 아니고 공사가 힘들어서도 아니며 우리편으로 인해서 들때가 많다 


현장사업 아무나 하는게 아니라는걸 새삼느끼면서 정말로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만이, 감당할수있는 범위안에서 

심사숙고해서 진행하기 바란다 사업을 시작하게되면 어디까지나 본인의 만족이 가장큰것이고 현지인과 데스크는

뒷전이 된다는것을... 오히려 방해요소가 안되는것에 감사하고 잘 진행하길





어쨌든....

나는 내일 암파라 농구장에 자유투를 던지러 간다

3점슛도 한번 던져봐야겠다 - 사실 난 농구를 싫어한다 맨날 파울에 반칙이라고 애들이 안끼워줬었다


아직 콘크리트 접합부분을 갈아내거나 부분 미장을 하고 도색할일이 남았지만 주말에 있을 코리아 페스티발 

이후에 작업하기로하고! 용접반에 벤치와 책상을 만들 철재료가 한가득이다 콜롬보 다녀와서 부지런히 때워야할 시간이다 


요새 저녁먹고 힘들어서 바로 잠드는데 비가 많이와서 저녁을 늦게먹었다 하루가 힘든만큼 빠르게 지나가고

보람차다 벌써 12월인데 구석에 박아둔 크리스마스 트리에 점등식이라도 해야지....

착한일 많이한다고 주위에서 칭찬받는데 착한일 하는과정이 악당이라서 주위사람들에게 미안한 마음뿐이다

그러니까 산타할아버지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양발에 순하리 한병만 넣어주고 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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