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드위젯


암파라 생활 2016년 3월 21일 - 자프나1 스리랑카




스리랑카에서 살면서 누군가 가보고 싶은곳을 물어본다면 나는 단연코 시기리야보다 자프나를 꼽았다 다수인 싱할러

불교도는 스리랑카에 살면서 조금 물리는 맛(?)이 있었고 타밀사람들의 수도와 같은 자프나에 대한 호기심은 혹시 

자프나가 다른 나라 이상의 큰 문화적 이질감을 주지는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감 같은것 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더불어 부임초기에 다녀온 만나르에 대한 좋은 기억들이 자프나행 결정을 도와준것같다


이핑계 저핑계로 부임초반에는 스리랑카 안에서 여행을 아예 못(안)갔고 또 갈만한 여유가 생길무렵, 스리랑카 정부에서는 

종족간 긴장감을 이유로 무려 일년간이나 자프나에 외국인 출입을 통제했다 자프나 코이카 단원들마저 철수하는 

당에 일반단원들의 여행은 언감생심. 기회만 노리고 있을뿐이었는데 몇달전 98기 단원의 재파견을 시작으로 단원의 

재파견이 시작되어 다행이 자프나행을 결정하는데 고민을 줄일수있었다 


그래서 자프나로 떠나기로했다..... 말년에.... 이제 가면 다시 언제올지 기약이 없기때문에.......


누워라엘리야 마탈레를 이어가면서 스리랑카 현지재료를 이용한 해물파전과 돈까스에 슬슬 마스터가 되어갈 무렵 

자프나에있는 코이카 스리랑카 끝판왕에 대해서 좀 먹여야겠다는 생각을 했던것같다




스리랑카에서 기차가 주는 의미는 여러가지인것같다 특히나 기차가 없는 암파라에서 살고있는 나는 덜컹거리는 낭만이나

방해받는 것 없이 한참을 시원하게 달릴수있다는 매력이 참 좋았고 더불어 (비록 바닥은 시원하게 뚫려있지만) 급하면 

언제고 갈수있는 화장실이 좋았다 그래서 자프나에 갈때도 정말 망설임 없이 기차를 선택했고 어둠이 아직 가시지 않은 

콜롬보 역에서 기차에 몸을 실었다 








1등석을 구매했기때문에 쾌적한 여행을 기대했으나 에어컨이 나오지않는 현실에 당황하기 시작했고(자세한 기차등급은

스리랑카 기차등급 포스팅을 참조) 날이 밝아올무렵 감파하 인근에서 차장밖을 내다본 나는 무언가 심각하게 잘못되었다는걸

직감한다. 기차는 매우 길었다..... 롱디스턴스 트레인 + 에어컨이 없는 일등석의 조합은 낮은등급에서도 유명한 등급의 기차...

이때까지만해도 이 등급의 기차여행의 심각성을 자각하지 못하고있었는데 이 심각성이 현실감있게 다가오는데는 크게 오래

걸리지않았다










1등석이라서 자리가 없는게 아니라 기차 전반적으로 자리에 사람들이 없었다 스리랑카 기차표검사는 굉장히 빡빡하게

하는것으로 유명한데 심지어 기차표 검사도 안했다. 널널한 기차.. 그것은 현지인들조차도 이등급의 기차는 타기를 꺼려한다는것을

의미한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등줄기에 소름이 돋기 시작한다. 잠으로 기절했다가 깨어나기를 수차례 반복했다

크게 달라지는 풍경없이, 의미없이 차창밖으로 스쳐지나가는 소떼 들과 나무, 핸드폰 전파라도 일정하면 핸드폰이라도 

들여다 볼텐데 스리랑카답게 역이있는 주거구역을 제외한 지역은 일반통화 신호조차 잡히지 않는다 

(전파세기 E-G-3G-H-4G순) 덕분에 역에 도착할때만 구글맵으로 어디쯤 왔다 확인할수있었는데 어차피 종점까지 가는 

열차였기때문에 조바심내지말고마음편히 먹기로했다 (스리랑카 기차는 안내방송이 없다) 



기차는 등급이 낮은관계로 선로문제로 진행을 양보해야하는 타이밍에서 일말의 망설임 없이 백프로 양보를 했고 간이역을 

제외한 좀 규모가 있다 싶은 정차역마다 모두 정차를 했다 이런 몇분의 연착이 모이고 모여서 도착예정시간을 두시간이나 

넘겨서 자프나에 도착했다 









내전이후 자프나에 세워진 가장큰 상업건물 카킬스 스퀘어. 카길스 그룹은 스리랑카 안에서 푸드시티라는 대형 마트 체인과

스리랑카에서 유명한 라이언 라거(맥주)를 직접 경영하고있는 대기업. 이밖에도 은행과 보험, 사료, 곡물등 여러분야에서

분야넓게 활동하는 기업이다. 자프나 중심에 랜드마크적인 건물을 하나 세웠다 1층 푸드시티 2층 상가 3층 푸드코트 4층 극장


자프나에 있는 랜드마크 카길스 스퀘어가 주는 내면적 의미는 반짝반짝 빛나는 건물만큼 깔끔하지 못하다 내전이후 전후복구 

사업 까지는 의미가 매우 좋아보이지만 자금의 주체가 결국 싱할러 불교도 라는것과 이것은 물리적인 전쟁이후에 경제적으로 

타밀사람들을 종속시킬수있다는 빌미를 만들어줄수있다는점이 그렇다 


카길스 스퀘어 바로옆에는 제트윙 호텔 건물이 들어서고있는데 제트윙 여행사 역시 스리랑카 업계1위 여행사이다 

군인,경찰,공무원을 제외하고 싱할러 불교도 민간인이 1%도 살지않는 자프나에서 이러한 상업인프라의 독과점은 결국 장기적으로

타밀사람들을 어렵게 할거라는 생각을 했다. 물리적인 영토에대한 욕심을 버리는대신 금융과 경제, 상업으로 통치하는 방법.

기술이 발전한다는것은 여러의미를 준다









처음 자프나에 올라간다고 동료단원들에게 말했을때 동료단원 하나가 예언 비슷한걸 했다 '스리랑카 코이카 끝판왕과

형의 조합이면 하루중 두번이상은 꼭 KFC에 갈것같다' 였는데 도착하자마가 닭집에 갔고 닭을 먹었다


스리랑카 닭집은 호주에 비한다면 닭 튀김옷의 바삭함이나 매콤하고 짭잘한 염지는 굉장히 잘되어있는 편이다 

그러나 물가에 비해서 굉장히 비싸고 (닭튀김 한개 - 250루피) 콜라 크기가 작으며 리필이 안된다(그레이비 소스가 현지식이다)

또한 호주에서는 원하는 부위만 골라먹는것이 안되는걸로 기억하는데 스리랑카에서는 원하는 부위만 골라주는 부위 선택이

된다 특별히 좋아하는 부위가 있다면 골라서먹길 추천한다 (닭튀김의 크기와 맛을 고려했을때 허벅지thighs 를 추천한다

그러나 내영어 발음이 구렸는지 한방에 알아듣는 점원이 없었고 꼭 다리를 들어서 허벅지를 보여줘야 챙겨줬던것으로 기억)


우리는 패스트푸드를 때운다의 개념으로 먹는경우가 많지만 개도국에서 패스트 푸드는 한국에서의 패밀리 레스토랑이상이니

위상을 반드시 기억하고 이용할것







자프나에 유명한 특산물(?) 중 하나인 리오 아이스크림. 콜롬보에도 매장이 있다고 하는데 자프나에서 처음먹어봤다

스리랑카는 육가공 식품의 수준은 매우 낮지만 유제품의 수준은 높은편이다 요거트나 치즈 아이스크림이 메이드인 스리랑카라도

맛과 품질이 굉장히 높은편이다 (심지어 한국보다 거의다 맛있다) 다만 품질이 선진국인만큼 가격도 선진국인경우가 있다







스리랑카에서 비주얼과 실제 맛이 괴리가 큰경우가 거의 대부분인경우가 많은데 리오 아이스크림은 

비주얼과 실제 기대한 맛의 괴리가 전혀 없었다 되려 실제맛이 더 좋았던것으로 기억한다 

가격역시 저렴하다 스리랑카에 가게되면 꼭 먹어보기 바란다 한국에 있는 아이스크림보다 맛있고 싸다

아이스크림 맛으로만 나라를 평가한다면 스리랑카는 개도국이 아니라 선진국이 분명하다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이 좋은걸 왜 이제 알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매번 스리랑카에대해서 남들보다

많이 그리고 열심히 알았다고 생각하면서 살았는데 집에갈때가 다되도록 맛있는 아이스크림 하나 모르고살았다








스리랑카의 극북은 자프나 극서는 만나르 극남은 마타라 극동은 암파라 등대 있는 아룽강베이 근처 어디쯤.

그리고 최근 자이카의 항공 측량을 통해 정새로 정해진 스리랑카의 중심은 캔디에서 암파라방향으로 

마이양가나 가는 길 산속 꾸불꾸불 달리는길 새로생긴 주유소 근처다 


자프나에 왔기때문에 관광명소인 포인트 페드로에 왔다 그냥 바닷가에 간판한개 덩그러니 놓여진 느낌

이곳이 스리랑카에서 가장 북쪽이라는 의미가 주는 감정이 딱히 없다 


자프나에서 낚시배로 두시간이면 인도에 도착할수있는거리이기 때문에 타밀족과 긴장관계가 형성되면 인도와의 

관계도 미묘해진다 그래서 서로의 어부를 나포해서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사례가 많았다

*인도의 남쪽에 타밀인들이 거주하고있다








바닷가 어부들이 조업을 기다리면서 한가로이 카드게임을 하고있었다 

풍어를 기원하는 깃발인줄알았는데 그물을 치고나서 그물을 친 위치를 표시하는 부표였다







동부나 남부지방에서 바닷가에 박살난 건물을 보면 당연히 쓰나미때문인걸로 생각하는데 자프나는

쓰나미의 피해보다 내전의 피해가 심각한 곳이다 타밀반군은 최후까지 자프나 인근 킬리노치에서 항전했고

전쟁후 그 피해는 고스란히 힘없는 사람들이 짊어지고 살아가야하는 '업' 과도 같은것이 되어버렸다


언제나 그렇듯 전쟁은 힘있는 사람들이 만들고 힘없는 사람들이 그 피해를 고스란히 감내해야한다 







우리를 태워갔단 뚝뚝기사가 사실은 이곳은 진정한 포인트 페드로가 아니라면서 동쪽으로 이동하기 했다 

구글맵으로 살펴보아도 포인트 페드로 라고 나온곳보다 동쪽으로 조금더 살펴보면 조금더 북쪽으로 튀어나온곳을

발견할수있는데 오로지 타밀어간판으로만  이곳이 진짜 최북단임을 알려주고 있다 


영토의 최북단. 스리랑카 바닷가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뚝뚝이로 지나가는 차창밖 해군기지의 불상은 

그동안 스리랑카에서 살면서 봐왔던 그어떤 불상보다 작고 조악했다. 타밀사람이 대다수인 자프나에서

군대에있는 소수의 싱할러 사람들이 예불을 드리기위해 만들어둔것이라고 했다 언제나 싱할라 사람들이

다수인곳에서 생활하다가 조악한 불상을 보는순간 내가 비로소 자프나에 왔음을 다시금 깨닫는다

그리고 언제나 다수로 살다가 소수가 되어버린 자프나 싱할러 사람들의 속마음이 궁금해졌다










밤에 켜는 전등같은거라고 뚝뚝기사가 설명해주었는데 합리적으로 잘 만들었다고 생각했다 









차가 있다면 밤에 와서 이 전등이 어떻게 불을 밝히는지 구경해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자프나는 타밀인들이 모여산다고해서 힌두사람들만 있는것은 아니다 상당수의 카톨릭과 개신교도들이 존재한다

바닷가에 덩그러니 놓여진 하얀 십자가는 누군가의 무덤이라고했다 

영원한 안식에서 푸른 인도양을 바라보는 누군가의 무덤이 자프나의 아픈 현대사와는 다르게 참 평화로워보인다 









코이카단원들은 보통 스리랑카 주거지에서 전화하면 오게되는 '고정' 뚝뚝 몇개를 사용하고있고 바티칼로아의 

'바씨' 처럼 스리랑카 코이카 단원 전국적으로 유명세를 타고있는 뚝뚝기사까지 있다 


자프나 역시 고정뚝뚝기사가 있는데 (자프나는 많은수의 뚝뚝이 미터기를 가지고있다 참고하길)

능숙한 영어로 타밀 울렁증을 해소시켜주었다. 처음도착했을때 오래전 먹었던 자프나 와인을 이야기하면서

자프나 와인 양조장에 가고싶다고 했었는데 그걸 잊지않고 집으로 돌아가는길에 와인양조장을 안내해주는 특전을 베풀었다 









와인양조장 수녀원에서 수녀님을 기다리는 동안 뚝뚝기사와 많은 이야기를 나눌수있었다 처음만났을때 한 이야기를 

잊지않고 들어준 고마움이 무언가 비범치않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이 아저씨는 내전이 발발하기전 십대후반의 나이로 

독일로 이주하여 결혼해서 18년간을 잘 살다가 고향을 잊지못하고 내전이후에 스리랑카로 돌아왔다고했다

요즘 문제가 되고있는 난민문제의 20년전 상황을 보게되는 새로운 기분....


이제서야 무언가 이상했던 느낌이 해소되는 느낌이었다 이 아저씨의 영어는 스리랑카 사람들이 쓰는 날아가는 악센트의 서남아 

영어가 아니라 딱딱 끊어지는 느낌의 독일 영어악센트라는 생각을 했다 


우리는 몇가지 궁금한게 있었다 독일어를 원어민으로 구사하는데 하필 스리랑카에서 택한 직업이 뚝뚝이 운전기사인지

자식들은 무엇을 하는지 뭐 이런저런 종류의.... 사생활을 중시하는 유럽 사람답게 아저씨는 끝내 대답을 흐렸다


청소년기와 청년기를 독일에서 보낸 이 아저씨의 합리성이 문득 떠올랐다 잔돈에 목숨거는 일반 뚝뚝기사들과 달리 

그동안의 흥정과 이용에 굉장히 합리적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 기다리고 나니 수녀님께서 수녀원에서 생산하는 제품을 가져다 주셨다 포도,석류,무슨 현지 과일로 만들어진 

코디얼 세종류. 각 400루피. 사진 좌상단 투명 유리병에 옅은 적갈색 하얀 라벨 유리병이 바로 자프나 와인이다 400루피.


자프나와인은 토속주로 분류되어 스리랑카 코코넛 "라" 와 더불어 일반 주류매장에서구매가 불가능하고 시장이나 토속 

주점에서 별도로 판매하고있었다 


슬슬 맛을 평가해야 하는 시간이 온것같다 포도로만 만드는 일반 와인과 달리 자프나 와인은 포도, 계피, 설탕, 정향을

주원료로 만들기때문에 맛이 조금 독특하다 특히나 한국사람들은 정향(clove)에 친숙하지 않은데 한국에서는 치과진료나

치약을 만드는데 주로 사용된다는것을 감안할때 자프나 와인은 호불호가 아니라 일단 시작은 무조건 "불호"로 시작하게 

되는것이 맞고 은근히 높은 도수(14도정도)에 취해서 정향 향기에 무감각해지거나 입맛이 정향을 좋아하는 입맛으로

바뀌기 전까지 많이 마셔야 맛있어지는 그런...... 맛이 분명하다 


*치과진료를 받은지 얼마안된 사람이 술에 적당히 취한채로 자프나 와인을 먹으면 본인의 치과진료로 때운 아말감이나 

레진이 잘못된것은 아닌지 혓바닥으로 치료받은 치아를 확인하게되는데 이것을 지켜보는것 또한 재미다




고등학교시절 외국인 노동자를 위해 만들어진 방글라데시 식당에 처음갔을때 음식이 너무 어려웠다

한국어에 조금은 서툰 사장님이 웃으면서 말했던 말이 떠올랐다


" 한번 먹어 안되요 두번 먹어 안되요 세번먹어 맛있어요"


자프나 와인은 정향을 빼고 주문제작을 할수있다 보통 5월 포도 수확부터 숙성까지

2년의 시간이 걸리는데 누군가 스리랑카 코이카단원, 자프나 단원으로 5월에 파견된다면 자프나에가서 

커스텀 와인 주문을 해서 귀국할 무렵 처음을 기념하며 마시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당신을 위한 수도원의 와인 - 자프나


*자프나 와인은 미사 전례용과 더불어 약으로 쓰인다 현지인들은 위장병에 자프나 와인을 마신다





자프나 와인의 시작은 이렇다. 초기 식민지 시절이 끝나고 안정기로 접어들면서 교회는 현지인 사제와 수도승 양성의 

필요성을 느꼈고 늘어나는 성당과 수도원 수녀원에 맞추어 미사 전례용 포도주가 더 많이 필요하게되었다 빵은 현지에서 

만들면 되는데 포도주만은 현지에서 수급이 어려웠으므로 비교적 포도가 자라기 좋은 자프나에서 포도를 재배하고 

수도원과 수녀원에서 와인을 만들기 시작한것이 자프나 와인의 시작이고 그 역사는 무려 200년이 넘는다


범죄의 재구성이라는 영화 중 박신양이 염정아에게 작업거는 장면을 보면 프랑스 포도나무가 2차대전에 다 불타서 

맛이 떨어진다는 이야기를 한다 그러면서 전쟁을 겪지않은 칠레산 포도나무의 위용을 설명하는데 이런식으로 포도 나무의

 단순 "역사" 로만 따지면 스리랑카 자프나의 포도나무 역사도 그렇게 가난한것은 아니다 









수녀원 뒷뜰에 있다는 포도밭을 꼭 보고싶었다 포도나무야 수도원이 아니더라도 밖에서 만나볼수있겠지만 

꼭 수도원 포도밭을 보고싶은 고집이 생겼다 수녀님께 아쉬운 사정을 말씀드리고 

꼭 자프나에서 와인을 만든다는것을 알리고 싶다고 말씀드렸다 원장수녀님의 허락을 구하고 

숨겨진 수도원의 포도밭으로 들어간다








중세시대 수도원을 보는 기분으로 소와 닭들이 있었고 트랙터와 헛간이 있었다








나무의 굵기로 보아 그렇게(?) 오래되어 보이지는 않는 나무들 - 원래는 수사들이 수도하는 수도원에서 와인을 만들다가

수녀원으로 자리를 옮겨 포로를 재배하고있었다 스리랑카에 2년가까이 거주하면서 스리랑카산 포도를 먹어본적이 없는데

자프나 포도를 먹어본사람의 증언에 의하면 매우시고, 매우맛이 없다는평가 - 애초에 와인을 고려하고 보급된 품종이라는

설이 매우 강한 설득력을 갖는다 포도밭에관리인은 포도나무에 물을주고있었다 5월에서 6월에 포도를 수확하여

와인을 만들고 2년의 숙성기간을 갖는다고 했다









수녀원 관람을 마치고 돌아가는길에 nilaavara 우물에 잠시 들렀다 우리를 안내한 뚝뚝기사의 말로는 

이 우물의 수심을 아무도 모른다고했다 낚시줄에 돌맹이 매달아서 던져보고싶었으나 신들이 많은

자프나 힌두마을에서 분명히 우물에 대한 신이 있을텐데 로마에는 로마법 자프나에는 자프나법 

2016년 우물의 깊이를 모르는 이유는 못재서 라기보다 안재서라고 생각했다






뚝뚝에서 찍은  우물 간판 사진 

동양인 두명이 일행으로 다니기 때문에 뚝뚝 기사에게 현지인들은 심심치 않게 중국인이냐 일본인이냐를 

물었고 또 그정도 현지어는 알아듣는 나는 꼬레아를 쿨하게 말해주고 간다 


심심하고 무료할때 현지인이 조심스럽게 말걸면 신나서 이야기할수있는데 지치고 피곤할때,또 술이라도 한잔 걸치고 

나에게 말걸면 그게 또 그렇게 고역일수가 없다 현지인들과 잘지내자고 왔는데 현지인들에게 지쳐버리면 참 난감할때가

 많다 그릇이 작지는 않다고 생각했는데 내그릇이 이것밖에는 안되었나 자책할때도 많고 뭐하자고 여기와서 고생하는지

심지어 코이카 봉사단에 지원했던 처음'선택'을 후회할때도 있었다 


매번 반복되는 내 신분에 대한 설명과 놀러온 외국인이 아니라는걸 일일히 설명하는것, 지친다... 충분히 지치고도 남는다

기관과 집만 왔다갔다 하는 사람은 자기 프레임 주변 사람들만 설득하면 그럭저럭 살만한데, 활동위가 넓은사람

(흔히 말하는 일을 만들어서 하는사람)이나 현장사업이라도 직접 공사를 하게되면 참 사람만나기가 두려워질때가 있다


내가 코이카를 선택한것은 무언가 진취적인 삶과 인생에 대한 도전이었는데 개도국에서 진취적일수록 도전할수록 힘들고

어려웠던것 같다 - 물론 이겨내면 정말 형언할수없는 보람이 당신에게 찾아올까?



담배를 피우면 담배를 한대 태우고 커피나 차를 마시는 사람이면 한숨 쉬고 가는것도 중요하다 


말이 잘통하는 사람들과 잘사는 나라에서 사업하려고 이곳에 온것이 아니고 충분이 이럴만한 사람들과 이정도일...

누구나 예상하고 오는일 아니겠는가 


교육원에서 누누히 들었던 문화의 상대성에 대해서... 파견전에 예상치 못한 범주에서 이 문화의 상대성이 나타나게되면

보통은 불편함이나 불쾌함과 같이오게되는경우가 많더라 동년배 또래에 비해서 많이살고 많이 봤다고 생각했는데 

예상치 못한 현지의 일로 당황하거나 어려울때 나는 아직도 멀었다고 생각한다 













덧글

댓글 입력 영역


애드센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