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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롬보 생활 2016년 8월 17일 스리랑카



이주전 이맘때 서른 여덟명의 대학생 봉사단이 스리랑카에 왔고 우리는 아뚜르기리야 NIPM에서 스리랑카 적응 훈련을 했다

이곳을 교육장소로 선정하게된 이유는 콜롬보 시내에 우리 인원 전체를 수용할만한 시설은 특급 호텔밖에 없었고

전에 그나마 우리단체(코이카)와 친밀했던 스리랑카 파운데이션은 열악한 시설에도 호텔수준의 가격을 불렀다 

구구절절 적었지만 돈값을 못하는 시설때문에, 그래서 우리는 콜롬보시내에서 한시간 거리 아뚜르 기리야에 여정을 풀었다 


NATIONAL INSTITUTE OF PLANTATION MANAGEMENT 줄여서 NIPM , 사실 이곳은 농장관리 외에 스리랑카 노동자들이

한국에 가기위해 훈련을 받는장소로 유명하다 한국어 시험을 통과하고 스킬테스트를 보고 대기하고있다가 

한국에서 일하게될 회사가 정해지면 고용계약서와 함께 이곳에 입소하여 열흘간의 훈련을 받게 된다 


예전에 나도 전에 이곳을 취재했던 기사를 어렴풋이 봤던기억이 난다 군대처럼 빡빡 자른 머리 하얀 셔츠 까만 바지 

굉장히 부정적으로 적었던 기사로 기억하는데 그당시 나는 한국에 있었으므로 큰 감흥없이 읽었던것 같다

몇주전 한국에 간 자머러도 이곳에서 사진을찍어 나에게 보냈고 그장소가 어디인지 쉽게 찾을수있었다 


우리의 교육기간은 2주, 한국에 가는 스리랑카 친구들의 교육기간은 열흘이었는데 퇴소일이 15일로 같았다 

우리가 먼저 5일동안 교육을 받고있었는데 정확히 5일째 되는날 파르라니 머리를 민 사람들이 하나둘 입소했다


2층에 있는 한국사람들은 스리랑카에 적응하기 위해 스리랑카 음식을 손으로 먹는 연습을 했고

1층에 있는 스리랑카 사람들은 한국에 적응하기 위해 스리랑카 음식을 식판에 수저로 먹는 연습을 했다 

식사때마다 '잘먹겠습니다 감사히먹겠습니다'를 외치면서 삭삭삭 수저로 식판을 긁어먹는 소리는 아직도 애잔하기 그지없다


군대처럼 제식을 하고 다니는 사람들이다보니 아무래도 신경쓰일수밖에 없었고 더욱이 교육을 마치는대로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싣게될 그 친구들이.... 정확히 그친구들이 맞이할 이별이 미리 슬펐다


이들의 열흘간의 일정은 아침일찍 이루어지는 흔히 PT로 불리우는 체력단련 - 한국어수업 -체력단련의 연속인데 

일정이 굉장히 빡빡하다 교장 이동간에도 제식을 통해서 이동하고 식사할때를 비롯하여 일체의 잡담이

금지되어있었다 조용한 가운데 잔뜩긴장한 눈빛으로, 같은 NIPM을 설렁설렁 왔다갔다하는 내가 이들눈에는 신기해 보였으리라 

몇일 지나고나니 단체로 나에게 "안녕하시요" 하면서 설익은 발음으로 인사도 하고 그랬다  


어느날 이었다 휴식시간에 나는 2층 테라스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고 그날도 어김없이 백명의 빡빡이 백빡빡이 친구들은

열심히 제자리 걸음을 하면서 팔을 올리는 군대에서 배우는 가장 기본적인 제식을 하고있었다 그때까지 교육장소에 있는 

한국 사람들의 보편적인 생각은 저렇게 불필요한 훈련을 궂이 해야되는것인가에 대해 약간은 회의적인 감정이 지배하고 있었고 

말해봐야 바뀌지도 않을것인데 말해서 불필요한 긴장을 조성하는것이 또 이바닥의 룰이기 아니기 때문에 상호존중의 의미로 

서로 간의 교육에 일절 언급하지 않고 있었다 


저멀리 제자리 걸음을 하면서 업다운을 큰소리로 외치고 양팔을 올라가는 반대 다리에 맞추어 올리는 백빡빡이중에 꼭,

우리가 군대에서 그러하였듯, 올라가는 다리와 팔이 같이 올라가는 빡빡이 하나, 교관은 망설임 없이 다가가 시원한 팔동작으로

뺨을 후려갈겼다 짝 하는 소리가 너무 명쾌하다 피가도는 가죽끼리 부딪히는 소리야말로 얼마나 잔인한가.........

그리고 아차 싶었는지 테라스에서 담배를 피우고있던 나를 걱정스런 눈빛으로 쳐다보았고 나는 이런 상황을 걱정하는 교관을

그리고 빡빡이를 위해 옅은 미소로 아무일 아니라는듯 당신의 교육은 대수롭지않다는 가벼운 미소를 지어야만 했다 


이 빡빡이들이 이러한 교육훈련을 받는 이유는 이러했다 우리나라에 오는 16개국 노동자들이 처음부터 이런 훈련을 받았던것은

아니었다 당연히 우리나라의 요청도 아니었고 분명히 자발적인 움직임에서 시작된 행동이라고 했다 

16개국 국가중에서 가장먼저 이 훈련을 시작한 국가는 인도네시아였다 어떤 사유에서 였는지 인도네시아 정부에서는 한국에

인력을 송출하기 위해 한달동안 군대에 이들을 입소시켜 군대식 문화를 이들에게 주입시켰고 이것은 곧 영세한 중소기업

사장님 혹은 관리자에게 큰 매력으로 다가왔음이 분명하다 공장에서 가장 바닥인 비정규직- 생산직 김군마저도 

외국에서 온 이들을 천대할 수 있고 이들이 이러한 훈련을 밑바탕으로 잘 견뎌낼수있다는것은 고용하는데 큰 매력으로 

작용했을것이 분명하다 사장님들은 "빠릿빠릿" 한 인도네시아 노동자들을 선호할테고 그것은 종래 인도네시아의 국가적인 

이익으로 작용할것이라고 인도네시아의 혜안높은 공무원의 생각이 비참하게 적중했다 


스리랑카도 그리고 나머지 나라들도 가만히 보고만 있을수는 없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독일로 갈때 그랬듯 국가의 주요 외화

소득원인 인력송출이 위협을 받는다면 국가의 위기가 될지도 모를일이었다 그래서 스리랑카에서 어렵게 한국어 시험을 통과하고

인터뷰를 본다음 참가비 2만루피를 내고 군대식 훈련을 감내하면서 때로는 내려치는 뺨도 감내하면서 한국을 준비하게되는것이다


이 "빠릿빠릿함"을 위하여..... 훈련중에 죽은 사람이 생길정도로 .....


여기서 조금은 쌩뚱맞을수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2차대전 미국과 일본의 군대를 비교하면 참 극명하게 대비된다 

자유와 자율을 중시하는 미국군인과 엄격한 규율과 통제를 중시하는 일본군인으로 나뉠수가 있는데 이것은 군대를 형성하는

병사들의 출신이 중요한 영향을 미치게된다 고등학교 및 최소 중학교 이상의 교육과정을 마치고 대도시에서 노동자 생활을 하다

모병되어 전쟁에 참가한 미국군인에게는 초등교육을 간신히 마치거나 그마저도 마치지 못한채 시골에서 농사를 짓다가 

강제로 징집된 사람들과 같은 분위기를 기대할수 없었으리라 

일본군대는 교육받은 장교 및 부사관에 의해서 기합으로 대변되는 구타와 욕설로 군대가 유지되었다 훈련소에서부터 

농사만 짓다 징집된 이들을 효율적으로 빠른시일내에 제국군대로 양성하기 위해서는 구타와 욕설만이 최고의 교육책이었으며

이들을 통제된 폭력집단으로 만드는데 가장 크고 빠르게 일조했다 

그리고 우리나라도 최근까지 군대에서 군기로 대변되는 폭언과 구타가 바로 이 일본군대의 잔재임을 누구도 부정하지 못한다

미국군대와 같은편으로 전쟁을 했지만 우리의 군대가 미군보다는 태평양 전쟁때  일본군대에 가깝다는것은 누구도 부정하기 

어렵다


이 "빠릿빠릿함"을 위하여 


뺨을 참 시원하게 슬프게 맞은 그친구는 결국 일본문화가 자신의 오늘의 불꽃튀는 싸다구가 될줄 알았겠는가

결국 이 "빠릿빠릿함"을 위하여 ...... 

뺨맞은 친구여 부디 한국에서는 행복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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